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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피 시리즈 무협 블루레이, 잡다한 뒷이야기

몰루이지 2019. 5. 31. 12:00

 오랜만에 <무협> 블루레이를 봤다. 새삼 훌륭한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카메라 시선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진가신 감독의 연출력은 무협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무협> 블루레이는 디비디 프라임의 블루레이 제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이른바 '디피 시리즈'. <무협>은 그 8번째 작품이고, 전세계 콜렉터들의 주목을 받는 플레인 아카이브 백준오 대표가 LLM에서 제작한 첫 번째 블루레이다. 지금 플레인 아카이브가 내놓고 있는 장인 정신 가득한 디자인의 시작이 <무협> 블루레이라고 할 만하다.



 <무협> 블루레이 제작엔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있는데, 백준오 대표가 이 영화의 열혈한 지지자인 내게 자막에 대한 질문을 했었던 것. 내가 <무협>의 극장 개봉 자막과 VOD의 자막이 최악이라 지적한 게 계기인 듯하다. 영어 대본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기엔 그 수준이 지나쳤던 터라 꽤나 강하게 비판했었다.


 오역의 방향성은 확고하다. <무협>이란 제목까지 달고 있는 무협 영화지만, 홍보는 '과학 수사'라고 해놓았더라. 이에 발맞춰 무협에서 주로 나오는 각종 호칭이나 단어들을 모조리 현대적으로 바꿔놓았다. 무공을 무술로, 경공을 기공으로, 포쾌를 형사로, 서하인을 탕구르족으로. 리우진시가 펼친 초식들은 한자 의미를 그대로 풀어서 마치 과학이라도 되는 마냥 교정해놓았다. 덕분에 이 영화의 번역엔 무협의 이미지가 거의 없다.


 문제는 <무협>에 과학 수사가 안 나온다는 점이다. 서 포쾌는 그저 상상력과 통찰력이 뛰어나고, 침술에 능한 거지 과학 수사를 하는 인물은 아니다. 침술과 과학의 상관관계는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



 그런 상황에서 백준오 대표가 자막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가 했던 건 '무공 고강'과 '경공' 두 가지는 고치는 게 낫겠다는 어설픈 요청이었다. 즉, <무협> 블루레이의 최종 버전에도 완벽한 자막이 들어갈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광범위한 수정을 요구하지 않았던 건 내가 중국어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오랜 기간 무협 영화와 드라마를 본 경험 덕에 적당히 들리는 정도로 섣불리 손댔다간 자막 전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금에 와선 그냥 전부 정리해서 전달했다면 어련히 알아서 잘 마무리하셨을 텐데 싶기도 하다.


 디비디 프라임의 유력인사가 여럿 엮인 당혹스런 상황도 발생했었다. <무협>은 보통화로 촬영한 영화인데, 블루레이에 HD 사운드로 들어간 음성 트랙은 광둥어였다. 이 사실을 알리는 오지랍을 부린 덕에 여러 유력인사로부터 '딱히 중요하지도 않은 거 왜 굳이 이제와서 딴지를 거느냐'는 뉘앙스의 비난을 받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이를 지적한 시점이 완성 직전이었던 건 틀림이 없다. 나 때문에 제작비가 추가되지 않았다면 그런 원색적인 비난을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결과적으로 디피 시리즈로 발매된 <무협>은 보통화, 광둥어 둘 다 HD 사운드로 실린 세계 최초 판본이 되었으니 그걸로 위안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