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내외로 있었던 각종 논란과 생각

즈라더 2019. 5. 15. 12:00

 <미스터 션샤인>을 재탕하는 건 작품을 재미있게 봤다거나 하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물론, 재미있게 본 드라마긴 하지만, 본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작품을 이렇게 바로 볼 만큼 애정이 생기진 않았다. <미스터 션샤인>의 내외적으로 아이러니한 면이 떠올라서 다시 살펴보려는 게 진짜 이유다.



1.

<미스터 션샤인>의 프로모션이 시작되고 방영 초기까지 비판의 9할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했다는 거였다. 근원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를 주로 주장했던 건 여초 사이트 회원들이었고, 특히 래디컬 패미니즘으로 유명한 몇몇 여성 우월주의 카페 및 사이트에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나올 회차도 아닌 마당에 활활 타올랐으니 기괴하다 할 만한데, 애초에 저쪽 사이트 자체가 제 정신은 아니라서 그러려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미스터 션샤인>이 내가 근래 본 드라마 중 가장 페미니즘을 그럴싸하게 담은 작품이었기에 문제가 되었다. 저 짝퉁 패미니스트들이 머리가 제대로 박혀있다면, 근대화보다 이쪽에 더 주목을 했어야 했다. 찬양해야 마땅한 작품을 엉뚱한 곳에 신경 쓰다가 지들이 똥을 뿌렸던 것이다.



2.

<미스터 션샤인>이 이병헌 원톱 드라마일 거라 생각하는 이가 많고, 이를 증명하듯 실제 방송 분량도 이병헌이 제일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작품의 구조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병헌은 유연석, 변요한과 함께 김태리의 주위를 멤도는 위성 중 하나에 불과하며,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김태리가 맡은 '귀족' 고애신이 어떻게 세상의 끝을 붙잡고 일어나는지에 집중한다. 그 시대 그 상황에서 귀족의 여아라는 한계를 깨가며 진취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고애신. 당대를 풍미한 남성 영웅들 전체를 끌고 다니며 독립운동의 모태가 되려했던 의병 고애신의 '비기닝'이 바로 <미스터 션샤인>이다. 애초에 고종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가 막 시작되는 시점까지를 담은 드라마라 식민지 근대화론이 발 붙일 틈이 별로 없는 반면, 시대에 맞섰던 고애신의 진취적인 삶은 (심지어 군인 몇 정도는 가볍게 두들길 수 있는 신체 능력까지 묘사했다.) 페미니스트라면 누구나 반겨야 마땅한 수준으로 담겼다.


권력을 가지고 조선에 귀환한 이병헌에 빌붙어, 그저 끌려다니기만 할 김태리의 모습을 보기 싫다고 했던 어느 페미니스트의 의견이 완전히 틀렸던 것이다.



3.

사실, <미스터 션샤인>은 시기를 잘 탔다. <미스터 션샤인>이 방영된 직후, 어느 시점인가부터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사람 취급을 안 하는 풍조가 남성들 사이에 생겨나버렸기 때문이다. <미스터 션샤인>처럼 노골적인 작품이 지금 방영됐다면 복날의 개처럼 얻어맞고 살벌한 이슈를 여럿 만들어냈을 법하다. 딱히 문제 있는 이야기를 담지 않은 데다 그럭저럭 '올바른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횡포가 불러온 반작용은 페미니즘 비슷한 것만 튀어나와도 사람 취급을 못 하게 해버린 터라 아주 아슬아슬했다.



4.

지금 우리나라의 여러 남초 사이트는 <원더우먼>마저도 정상적인 영화 취급을 안 한다. 그 정도로 반작용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미스터 션샤인>은 발연기의 극치였던 갤 가돗과 달리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김태리의 연기로 많은 걸 커버해냈다. 김태리의 연기가 김은숙 작가의 각본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극에 합리성이 생기고, 그녀의 주변을 위성처럼 도는 남성 영웅들의 태도를 이해하게 된다. 즉, <미스터 션샤인>은 '여자'가 아닌 '김태리'가 뛰어난 것이란 자기합리화가 가능한 드라마였다. 그래서 페미니즘 쪽으로 심각한 이슈가 발생하지 않은 걸지도.


 그 밖에도 이것저것 떠오르는 게 있는데 완전히 정리가 되질 않아서 천천히 적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