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특유의 시스템이 대규모 자본과 공 들인 작가주의적 연출과 만나면 <킹덤>이 나온다.
한국 드라마 특유의 시스템이란, '작가의 예술'이다. 16부작이나 하는 드라마를 '미니 시리즈'라 불렀던 때가 있을 만큼 한국 드라마는 아주 길었고, 이렇게 긴 드라마를 감독의 주도 하에서 기획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으로 극명하게 구분되는 시스템을 지닌 게 우리나라(였)다. 여기에 100% 사전제작과 대규모 제작비, 넉넉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킹덤>은 김은희 작가의 묵혀뒀던(?) 각본을 바탕으로 오랜 프리 프로덕션 끝에 촬영을 시작했고, 대규모 자본을 들인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거쳐서 나온 그 답안이다. 이 드라마는 감독의 예술일 수도, 작가의 예술일 수도 있는 조화를 이뤄냈다.
<킹덤>은 모든 걸 다 갖췄다. 수준 높은 특수효과나 장르에 걸맞은 고어씬을 비롯해 한국 방송사들의 사정 탓에 보여줄 수 없었던 것들을 필요한 만큼 보여준다. <싸인>, <시그널>로 유명한 김은희 작가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각본에 부족함이 없는 김성훈 감독의 연출이 더해졌다. 편집에서 영화판에서도 보기 드문 부드러움이 느껴지고, 신들린 촬영과 조명 앞에선 유명 헐리우드 스타가 다수 출연하는 영미권의 드라마들도 불계패를 자처할 것이다. 여기에 5.1채널 믹싱까지 더하면, 모자란 게 없는 드라마란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킹덤>의 제작비는 200억 원으로 추정된다. 6부작 드라마에 약 2000만 달러면 영미권에서도 최상급의 제작비라 할 수 있다. 아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에선 회당 제작비가 <얼터드 카본> 다음으로 많을 것이다. 그 대자본의 상당부분이 촬영과 조명에 쓰인 모양인데, 드라마의 영상은 그 돈을 헛되게 쓰지 않았다고 외치며 감상자의 눈에 마약을 투여한다. 대체 이걸 어떻게 찍은 건가 싶은 촬영이 이 드라마의 호평에 아주 큰 비중을 지녔다고 확신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에 고마울 지경.
본래 8부작이었던 드라마를 늘리고 나눠서 두 개의 시즌으로 제작한 덕분에 <킹덤>은 중간에 뚝 끊기는 이야기를 지녔다. 게다가 시즌2의 공개는 2020년. 그렇다고 나중에 한꺼번에 보라고 말할 순 없다. 시즌1의 조회수가 낮게 나오면 시즌2의 제작비를 감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즌2는 지금 한참 촬영 중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보게 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보세요. 제발.
뱀다리) IMDB에 따르면 <킹덤>을 찍은 카메라는 RED Helium이라 한다. 8K 해상도다. 넷플릭스의 드라마들은 RED 카메라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의 화질이 좋은 이유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