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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고 느낀 상실감

즈라더 2019. 4. 27. 00:00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고 온 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영화에 실망했음에도 감출 수 없는 이 감정. 이게 무슨 감정인지 MCU 블루레이를 재탕하다보면 알겠지 싶어서 '내일은 <아이언맨>부터 쭉 달려볼까?'란 생각을 떠올렸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전의 일부 히어로에 몰입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내가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이야기가 '끝'이 나서 상실감을 느낀 것이다. 몰입해서 봤던 드라마가 끝났을 때의 상실감과 비슷한데, MCU의 경우는 그게 무려 10년치다. 기껏해봐야 3개월에 불과할 드라마완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이었다.


 지금부터 하는 서두보다도 짧은 이야기엔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와 MCU,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한 초강력 스포일러가 담겨있으므로 주의를.



1. 

이제 더는 MCU에 캡틴 아메리카가 없다. 아마도 행방불명 처리가 될 듯하다. '은퇴'란 측면에선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닮았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브루스 웨인이 '이제부터 행복하게 살련다'란 의미의 은퇴라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캡틴 아메리카는 '이제 원 없이 살았으니 조용히 죽으련다'는 의미의 은퇴다. 즉, 희망적이고 즐거울 미래를 상상할 수 없기에 상실감이 큰 것이다. 굉장히 인상 깊고 이상적인 결말임과 동시에 어쩌면 원치 않았을 '나약한 캡틴 아메리카'였기에 안타까움도 큰 결말이다. 타임라인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고 페기 카터와 춤 한 번 추고 몰래 숨어살았을 캡틴의 과거(이자 현재)도 서글프다.


2.

블랙위도우는 과거에만 존재한다. 설마 전투가 아닌 방법으로 우정 역시 사랑이라고 설파하며 죽을 줄 몰랐다. 이 경우엔 상실감보단 허무함에 가깝지 않나 싶다. 


3.

더는 아스가르드의 왕 토르가 없다. 이건 토르의 캐릭터 붕괴와 연관이 많은데, 토르는 진정한 왕이 되자마자 PTSD에 빠져 제대로 리더 노릇을 해보지 못 했다. 그런 마당에 아스가르드를 발키리에게 넘겨주고 가디언즈와 함께 떠난다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나 <토르4>로 컴백해서 힘을 회복하지 못 한다면 '왕 토르'뿐 아니라 '토르' 자체도 날아갈 판이다. 이건 상실감이 아니라 실망감이다.


4.

새롭게 생길 히어로팀에 리더가 없다. 캡틴의 방패를 이어받은 팔콘은 당장 MCU를 이끌 재목으로 보이지 않고,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에 집중될 모양새의 캐릭터다. 또한, 기대주인 캡틴 마블이 리더가 되려면 아마 한 작품 더 만들어서 리더에 걸맞은 정신부터 갖춰야 할 것 같다. 토르와 비슷한 능력치를 가지면 단순무식해지는 건지 그냥 다 때려부수겠다고 말하는 걸 보며 '부디 피곤한 캐릭터가 되지 않았으면..'하는 생각부터 들더라. 블랙팬서? 첫 작품에서 '흑인들의 리더'가 되겠노라 대놓고 선언했다. 



 이런 이유로 이후의 MCU에 몰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 타격이 더 큰 모양이다. 주인공이 전부 교체된 시즌2를 기다려야 하는 느낌. 난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나 <아이언맨> 시리즈를 다시 보면서 '어차피 캡틴은 곧 노인이 될 거고, 아이언맨은 죽겠지'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싫다. 그래서 이들을 잊을 수 있도록, 새로운 히어로들이 더 많이 노력하길 바란다. 


뱀다리) 캡틴 마블 단발 진짜 어울리더라. 다음 시리즈에서도 같은 스타일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