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어벤져스: 엔드게임, 저스티스 리그와 맞먹는 실망감

즈라더 2019. 4. 26. 12:00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직후부터 사방에서 달려드는 스포에 지쳤다. 어느 캐릭터의 죽음과 예상치 못 한 캐릭터의 등장을 알게 되고, 전개 방식까지 알게 되고 나자 '이건 천천히 느긋하게 볼 만한 영화가 못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급하게 보고 왔는데......


 슬프게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내게 <저스티스 리그>를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안겨줬다. 작품의 수준이 아니라 실망감 측면에서.


 지금부터 쓰는 글에는 미세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으므로 정보를 아예 차단하고자 하는 분들은 읽지 않길 권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엔 팬들이 예상한 여러 답안 중 그럴싸하다 싶었던 것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촬영 현장 파파라치로 드러난 바와 같이 시간 여행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데, 그 방법도 뻔한 터라 많은 사람이 '어라? 이거 내가 예상한 그대로잖아?'라고 생각했을 거라 장담한다. 나처럼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조차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이야기를 떠올렸었다. 


 애초에 촬영 현장 파파라치가 예상보다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다 이해해줄 법도 했는데, 시간 여행으로 해결해야 하는 '미션' 중 액션의 분량이 극단적으로 적은 데다 팬서비스에 신경 쓰느라 극의 변주를 포기한 점을 이해하긴 어려웠다. 긴장감보단 반가움을 노린 연출이 노골적. 마블의 팬들에겐 큰 선물일 수 있어도 팬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어떨지 모를 일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감상할 당시 영화가 저지른 여러 널뛰기를 참을 수 있었던 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어느 정도 대답을 해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내 기대를 완전히 무너트리고 새로운 널뛰기를 거듭한다. 심지어 가장 중요했던 토르, 묠니르, 스톰 브레이커, 아스가르드에 대한 설명은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것도 오리지널 어벤져스의 일원인 토르에게 끔찍한 시련을 겪게 하면서. 이는 캡틴 마블이란 먼치킨 때문에 토르를 희생시킨 모양새라 다소 슬프기까지 하다. 



 근래 헐리우드의 트렌드는 PC다. 마블은 PC를 이용해서 범작에 불과한 <블랙팬서>를 아카데미 후보까지 올려놓았다. 그렇게 PC의 맛에 중독된 건지 마블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놓고 황당한 장면을 만들어놓았다. 어느 히어로를 구하기 위해서 뭉친 여성 히어로들의 모습에 '아니, 이건 너무 의도적이잖아?'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더라. 본작에서 타노스를 원맨쇼로 아작 내는 히어로가 딱 둘 있는데, 둘 다 여성이었고, 캡틴 마블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토르가 했던 '우주선 작살내기'를 대신 한다. 또한, 새로운 시리즈를 위해서 선택된 주인공은 흑인이다. PC 요소를 담은 영화를 지지하던 나조차 '이건 정말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을 지경. 안 그래도 클라이막스에 펼쳐진 액션의 분량이 지나치게 짧아 슬픈 마당에 이런 순간까지 등장하니 답답할 수밖에.


 지금까지 계속 비판만 해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재미없게 본 거로 오해할 듯하여 말해두고자 한다. 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기대치에 한참 못 미쳤을 뿐, MCU의 열정적인 팬인 내게 이 만한 선물이 없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떠오르는 어느 순간은 등골에 소름이 돋았을 만큼 감동을 받았고,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10년이 아닌가 싶어 행복했다. 액션의 분량이 빈곤하다곤 하나 적어도 핵심적인 포인트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담았다. 히어로들의 마무리와 시작을 다루는 방법에도 찬성이다. 


 즉,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MCU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겐 최고의 팬서비스다. 그러나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는 반쪽 짜리처럼 보인다. 이 영화를 완벽하게 즐기기 위해선 MCU의 영화를 모조리 감상해야 한다는 점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팬서비스 영화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뱀다리) 개인적으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전개는 '모든 것을 없던 일로 되돌린다'였다. 그렇게 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