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넷플릭스를 쫓지 못 하는 한국, 디즈니 플러스는 어쩌려고

즈라더 2019. 4. 20. 18:00

 넷플릭스라는 공룡이 한국에 상륙했지만, 아직도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진 못 한 모양새다. 여기엔 한국 넷플릭스가 주로 서비스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작가주의 영화, 저예산 비디오용 영화가 한국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넷플릭스는 여러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고 판권을 사가는 등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유저를 끌어모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이렇게 넷플릭스가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걸 보며 한국의 업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여 중요한 걸 하지 않고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고 있을까봐. 아니나 다를까, 일부 업체가 한국 드라마나 여러 영화의 판권을 확보하고 넷플릭스로의 유출을 막는 방식을 써가며 '발전'이 아닌 '공격'에 집중하고 있었다. 넷플릭스가 내재하고 있는 힘은 판권이 아니라 기술에 있음에도 그걸 모르고.



 4K UHD 시대가 왔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4K 영상을 보기란 쉽지 않다. 4K 카메라로 찍어도 후반 작업 땐 2K나 HD로 다운한다. 4K 촬영 원본으로 후반 작업을 하려면 편집과 VFX 과정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뿐 아니라 헐리우드마저도 4K 영상이 그리 많지 않고, 특히 마블 히어로 영화처럼 엄청난 규모의 VFX가 들어가는 프랜차이즈는 거의 대부분이 2K로 작업한다. 그런 와중에 넷플릭스는 자사의 오리지널 작품 대부분을 4K로 작업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며 한 발 앞서가는 중이다. 


 넷플릭스는 4K라는 표면적 해상도에만 신경 쓰는 게 아니다. 로컬디밍을 통한 HDR은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한 경향의 빛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발전이 기대되는 분야고, 넷플릭스는 이 HDR 기술 중 최상급인 돌비비전을 지원한다. 즉, 4K HDR 디스플레이를 가진 사람이라면 넷플릭스가 정답이라 할 만큼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영상은 엔터 업계 최상이다. (음향 역시 마찬가지라서 넷플릭스는 5.1채널을 넘어 돌비 애트모스까지 지원한다.) 이러한 폭 넓은 넷플릭스의 시스템은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에게 꿈의 플랫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자, 여기서 문제는 우리나라 업체들은 이런 넷플릭스의 기술을 쫓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인데.


 슬프게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거나 노력을 해도 성장이 안 되는 상황으로 보인다. 영상과 음향 퀄리티의 상승에 큰 관심이 없어보이고,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많은 판권을 사와서 서비스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수백 수천 개의 영화, 드라마를 서비스하고 있지만, 대부분 영화사가 적당히 만들어서 제공한 파일이나 기존에 서비스하던 파일을 그대로 올려두는 것이 대부분이다. 판권의 문제인지 성의의 문제인지 기술의 문제인지 모를 일이나, 어쨌든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기본적 인코딩조차 거치지 않고 있다는 건데, 이런 꼴을 보고 '노력은 했다'라고 말하면 분명히 거짓말이다. 



 혹자는 말한다. 우리나라 대중은 화질이나 음질에 별로 관심이 없고, 그마저도 스마트폰으로 보는 터라 차이를 알 수 없을 거라고. 이는 분명하게 틀렸다. 스마트폰의 화면이 커지지 않는다고 해상도까지 그대로인 건 아니다. 이젠 스마트폰으로 봐도 저화질은 저화질인 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대다. 지금 당장은 대중이 퀄리티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나 아무리 둔감해도 이렇게 계속 격차가 벌어지면 눈에 안 들어올 수가 없다. 근래 한국의 예능과 드라마 판권을 사서 서비스함과 동시에 <킹덤>과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넷플릭스 유저가 다시 반등하는 모양새인데, 넷플릭스의 높은 기술을 체험하게 된 사람들이 한국 업체 서비스의 퀄리티와 직접 비교해볼 건 뻔할 뻔자. 그리고 설사 대중이 파악을 잘 못 하더라도 기술의 발전은 머뭇거리면 안 된다. 


 애시당초 넷플릭스가 그저 기술에만 신경 쓰는 것도 아니다. 넷플릭스는 최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서비스하면서 자막을 통째로 바꿔놨다. 오역이 가득했던 극장 자막이나 그 오역 중 일부만 고쳤던 VOD, 블루레이, 디비디의 자막을 본 사람들은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자막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거의 대부분의 오류가 정정되어 있고, 개그씬도 현지화된 표현으로 잘 살렸다. (정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자막이 엉망진창인 경우가 종종 보여서 욕을 먹고 있지만) 이렇게 넷플릭스는 의외로 대중이 바라는 걸 잘 파악하고 있다.



 운 좋게도 지금의 방법으로 넷플릭스를 밀어낼 수 있다고 치자. 그 다음은? 10년 전에도 비판받을 퀄리티로 판권 비용만 잔뜩 지불하는 기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 업체가 넷플릭스는 둘째치고 유튜브 프리미엄이나 아마존 프라임의 발끝마저도 쫓지 못 하는 상황이란 걸 잊으면 곤란하다. 넷플릭스가 밀려나면 유튜브나 아마존, 어쩌면 훌루까지 치고 들어올 수 있다. 판권에 들어가는 돈을 아껴서 기술 발전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온 지 한참 지났는데도 제자리 걸음 수준이라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일부 업체는 넷플릭스가 저지른 위법 사항을 들고 나오며 항의만 하고 있던데, 그런 방식으로 외국 업체 밀어내기에 주력하다간 갈라파고스된다. 무슨 쇄국 정책도 아니고, 10년 뒤쳐진 김에 20년까지 뒤쳐져보려고 저러나 싶다.


 곧 디즈니 플러스라는 초대형 공룡이 탄생한다. 디즈니가 제작한 가족 영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그 실사 버전, 디즈니 제작의 시리즈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이것만으로도 이미 한국 시장은 독점이다.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작품들과 달리 디즈니가 서비스할 작품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200% 딱 맞는다. 마블민국 이전에도 디즈니의 작품들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누려왔다. 게다가 디즈니 플러스가 지금 한국 업체가 서비스하고 있는 디즈니 판권 작품들도 하나둘씩 다시 가져갈 텐데, 이건 어떻게 대항할 방법조차 없다.


 한국 업체들이 지금부터 해야 하는 일은 판권 전쟁이나 딴지 걸기가 아니라 질적 향상이다. 앱의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더 뛰어난 화질과 음질로 영상을 제공할 수 있게 필사적 노력을 기울여야 살아남지, 안 그러면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프리미엄에 밀려 망하는 길 밖에 없다. 사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설마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한국 업체 이용해달라며 쇄국 정책을 추진하진 않겠지. 웰컴 투 갈라파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