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에어컨 세정제로 개인이 청소하면 안 되는 이유

몰루이지 2019. 4. 24. 18:00

 이 원룸에 들어와서 산 것도 벌써 3개월. 슬슬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터라 에어컨을 살짝 틀어봤다. 그리고 기겁했다. 여름과 맞서 싸운 승부사가 1년 정도 씻지 않은 상태로 다닐 때나 날 것 같은 지옥 같은 냄새가 풍겨오더라. 이대로 사용했다간 이 지독한 냄새가 내 몸에 다 밸 테고, 절대 건강할 수가 없다. 이런 냄새 맡으려고 교통이 심하게 안 좋은(지하철 역으로 가려면 버스 타고 10분 걸린다.) 이 집에서 45만 원이나 내며 사는 게 아니다. 냄새를 없애야 한다.


 먼저 집주인에게 전화해보니 얼른 찾아와서 살펴봐주더라. 원룸 사업을 한지 얼마 안 된 분인지 '에어컨 곰팡이'란 존재 자체를 인식 못 하시고 곰팡이를 가리켜 '먼지' 아닌가요? 라고 물어보신다. 처음엔 처리해주지 않으려 발뺌하는 건가 싶었는데, 내게 에어컨 청소 업체 가격을 묻고 원하면 해주겠다고 하는 걸 보니 정말 몰랐던 모양이다. 쉽게 말해 이 에어컨은 구매한 이후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세균의 온상지인 셈. 반드시 업체를 불러서 처리해야 할 메인 빌런이었다. 그러나 난 바로 청소 업체를 불러주겠다는 주인의 친절한 말에 감동받고 '벽걸이 에어컨인데 업체를 부를 것까진 없으려나..'하는 미련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결국, 직접 청소하겠다고 다짐하고 인터넷을 통해 에어컨 세정제 4통을 샀다. 이전에 살던 투룸에서도 벽걸이 에어컨을 사용했었고, 당시 청소하는데 대략 4통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낡아서 버리기 직전인 수건들도 가져왔다. 에어컨 세정제의 액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함이다.


 '이제 준비는 완벽해. 깨끗해져보자.'


 30분 뒤, 난 그렇게 생각한 내 머리를 아스팔트에 갈아버리고 싶어졌다.


본문과 아무 관계 없는 사진


 원룸에 들어와있던 에어컨은 수년 전 초저가형으로 나왔던 녀석으로, 사이즈가 크지 않다. 이 크지 않은 사이즈에 냉각핀과 프로펠러가 억지로 쑤셔넣은 듯 박하게 들어가있다. 즉, 에어컨을 떼서 완전히 분해하지 않으면 구석구석 청소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든 깨끗하게 청소하려고 온갖 각도에서 세정제를 뿌리다보니 내 얼굴과 몸이 세정제 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끝없이 나오는 구정물에 주인의 멱살을 잡고 '앞으론 에어컨 청소 꼭 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이미 시작한 청소를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는 일. 죽을 힘을 다해 땀을 줄줄이 흘려가며 청소를 하는데, 예상치 못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에어컨의 뒷편에 세정제가 들어가서 벽지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이즈가 큰 에어컨은 그쪽으로 흘러가지 않게 최대한 조심할 수 있지만, 이 에어컨은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세정제 뿌리기를 중단하고 벽지를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구멍만 막으면 되는 과거 에어컨만 생각하던 자신을 비난하면서. 물론,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통 에어컨을 청소할 때 필터 청소를 걱정하진 않는다. 필터는 손쉽게 뺄 수 있어서 자주 청소하게 되는 부품이다. (이거만 해줘도 낫겠지 하는 착각) 그러나 이 에어컨은 구매하고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필터의 레퍼런스를 제시하고 있었다. 필터에 피어있는 곰팡이는 마치 수십 년 뒤 자손에게 '내가 수십 년 전에 에어컨을 청소하는데 말이지..'로 시작되는 옛날 이야기를 물려주기 적합한, 차라리 똥을 한 번 보겠노라 다짐하게 하는 비주얼이었다. 무엇보다 수세미로 밀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악질이었다.


본문과 아무 관계 없는 사진


 팔과 목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을 거치고 4통의 세정제를 다 썼을 때, 그럼에도 구정물이 멈추지 않을 때, 나는 옛날 말로 GG를 외쳤다. 이 이상 했다간 내 몸과 정신이 망가질 거란 확신을 가지고 모든 걸 멈춘 채 건조하기 시작, 약 1시간 뒤 에어컨을 가동했다. 고생한 값은 하는지 그 지독한 악취가 사라져있었다. 완전히 깨끗하게 청소하는덴 실패했지만, 그래도 냄새는 확실하게 안 나니까 자기합리화하며 버텨볼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에어컨 가동 시작하고 2주 정도 지나면 다시 쉰내가 진동하겠지만, 그 땐 주인집의 친절을 받아들여 업체를 불러 작업할 것이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에어컨 세정제로 직접 청소하겠노라 생각한다면, 먼저 에어컨 구조를 살펴보고 청소하기에 넉넉한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고, 곰팡이의 상태가 얼마나 심한지도 체크하자. 만약, 공간이 부족하고 곰팡이가 심각하게 펴있다면, 개인이 했다가 크게 고생한다. 참고로 에어컨 세정제 4통이면 업체와 성분에 따라 만 원에서 2만 원 정도 한다. 에어컨 청소 업체는 사이즈에 따라 5만 원에서 8만 원 사이를 부르는 거로 알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는 본인이 판단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