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킹덤에서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의 지향점을 보다

즈라더 2019. 4. 18. 06:00

 요새 <미스터 션샤인>을 다시 달리면서 일본인들이 이 드라마를 어떤 경로로 봤는지 궁금해졌다. 일본의 방송국에서 방영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 했고, 디비디나 블루레이가 나오기엔 일렀던 그 시점, 분명히 내 일본인 친구는 <미스터 션샤인>이 재미있다고 내게 추천해줬던 기억이 난다. 알아보니 <미스터 션샤인>의 해외 판권을 통째로 넷플릭스가 가져간 모양이더라. 일본 역시 넷플릭스의 인기가 꽤 있는 편이라 접근하기 편리했던 것이다. 


 넷플릭스의 긍정적 요소 중 가장 인상 깊은 게 인터넷 서비스라서 여러 나라의 컨텐츠를 즉시 서비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간 우리가 만날 수 없었던 나라의 영화나 드라마, 쇼 등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판권만 있으면 자막 작업을 거쳐 바로 서비스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 난 넷플릭스를 통해 남미나 비영어권 유럽, 동남아의 작품을 다수 감상했고, 생전 처음 듣는 듯한 언어와 상상도 못 한 문화가 탄생시킨 아이디어들에 놀라는 중이다. 어쩌면 대중문화가 갈라파고스화되지 않기 위한 키워드가 바로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일지도 모른다.




 한국 드라마 <킹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 회당 제작비가 가장 많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넷플릭스 인기가 그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으므로 애초에 외국 서비스를 고려해서 제작한 셈이다. 해외 선판매를 통해서 제작비를 회수하려고 엄청나게 고생하는 드라마 제작사들과 다르게 넷플릭스는 비겁(?)할 정도로 손쉽게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다. 또한, 당장에 <킹덤>의 조회수가 기대 만큼 안 나오더라도 손해를 메우는 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간 한국 드라마의 제작비가 인구수를 간단히 초월할 수 있었던 건 동북 아시아의 한국 드라마 수요가 상당했기 때문인데, 이는 다른 나라의 기존 넷플릭스 유저가 <킹덤>을 보지 않더라도 <킹덤>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 신규가입하는 한국 드라마 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플릭스는 이런 프로세스를 담보로 더 다양한 나라의 작품을 전세계에 송출(?)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킹덤>을 전세계에 서비스하면서 나온 반응은 작품 자체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난 설마 우리나라의 전통 모자(갓)이 외국에서 화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국 사극에 이렇게 멋진 모자가 잔뜩 나온다는 걸 왜 이제야 알게된 거냐면서 슬퍼하는 모자 덕후(?)를 보며 오히려 살다살다 '한국 전통 모자에 홀릭하는 외국인'을 볼 줄 몰랐단 생각에 헛웃음. 글로벌 시대라고 해도 결국,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것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저들은 한국의 전통 모자에 대해서 알았고, 나는 외국에 모자 덕후가 엄청 많다는 걸 알았다.




 넷플릭스의 힘은 중국 쪽에서도 발휘했다. 중국의 사극이라고 하면 화사한 보정 탓에 영상이 떡이 되어버리거나 배우의 입과 따로 노는 성우의 더빙 등 장벽이 상당한 편인데, 넷플릭스가 판권을 사들인 <천성장가>는 웬만한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화이트밸런스가 적절하게 맞는 디지털 색보정, 배우의 육성과 일부 성우의 공들인 더빙이 생생하게 담긴 사극이다. 중국 영화계에서도 보기 드문 뛰어난 퀄리티의 후시 녹음과 동시 녹음, 주로 영화에서 활약하던 촬영, 미술, 의상팀의 필사적인 헌신까지. 그렇게 <천성장가>는 기존 중국의 사극들과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이런 내용, 이런 비주얼, 이런 스케일의 사극을 볼 수 있게 된 건 해외 판권을 넷플릭스에 넘기고 받은 제작비 덕분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런 작품을 나와 같은 '외국인'이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아주 손쉽게 볼 수 있으니 놀라울 수밖에.




 글로벌 시대라 해놓곤 결국, 끼리끼리 안에서 돌고 돌았던 대중문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진짜 글로벌해지고 있다. 언어, 문화의 장벽은 취향으로 허물 수 있지만,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작품과 취향을 대질해볼 기회조차 못 잡았을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큰 성공을 보고 많은 회사가 VOD 플랫폼을 만들고 있지만, 그 회사들이 넷플릭스처럼 전세계 각국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를 만들거나 해외 판권을 통째로 사들여 다른 나라에 실시간에 가깝도록 서비스해줄 지는 의문이다. 유튜브나 아마존 비디오 등은 분명히 이런 측면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고, 디즈니 플러스 역시 외국의 컨텐츠까지 흡수해서 전세계에 서비스하겠단 의도보다는 디즈니 산하의 컨텐츠를 오리지널화해 시장을 장악하겠단 야망만을 드러낸다. 


 넷플릭스를 쫓아 출범한 후발주자, 특히 디즈니 플러스는 외국의 컨텐츠를 제작하고 서비스하는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이쪽 시장 전쟁에서 디즈니 플러스는 거대한 공룡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판권의 양, 질 모두가 타사를 가볍게 압도한다. 그렇기에 더욱 그들은 외국의 컨텐츠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대중문화는 물처럼 고이지 않아야 하고, 피처럼 섞여야 한다. 지금 넷플릭스가 불러온 현상은 단순히 영화나 드라마, 쇼를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난 더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분야 컨텐츠를 보고 싶고, 그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으며, 다른 나라의 누군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 믿는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가 이런 생각을 이어갈 수 있게 돕는 존재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