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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비, 동류 영화의 틀을 깨려는 시도

몰루이지 2019. 4. 13. 00:00

 다소 민감한 소재, 뒤섞인 정치적 입장 덕분에 접근하기 어려운 영화처럼 느껴질 <강철비>. 그런데 이 영화, 그냥 매끄럽고 깔끔하게 만들어진 액션영화로 접근하면 된다. 민감한 부위를 쿡쿡 찌른다고 해서 <1987>이나 <남한산성> 같은 영화로 접근하는 게 오히려 안 될 일이다. 섣불리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강철비>는 깔끔하게 빠진 액션영화고, 그렇게까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다. <변호인>으로 고생 많았던 양우석 감독이 한 발 물러섰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강철비>는 남북 관계를 다룬 다수의 영화가 보였던 한계를 깨기 위해 여러 무기를 마련해놓았다. 살짝 들춰보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무기는 퀄리티가 꽤 괜찮은 총격씬. 일당백 북한 요원에 사방팔방 털리기 십상인 '남한 수비군'이 <강철비>에선 꽤 치열하게 역할을 수행하고, 덕분에 총격씬이라 할 만한 것들이 잦게 나온다. 죽어가는 동료에 대한 신파적 접근 없이 충실하게 전투를 벌이는 총격씬은 아마 한국영화에선 금기에 가까운 것일 터. ("안돼"를 외치고 이를 악물며 총을 쏘는 게 한국영화의 공식 아니던가) 북한의 기습공격과 예상 밖의 전술에 크게 밀리자, 전차까지 동원하는 남한의 돈냄새에선 '어쩔 수 없이 밀리는 장면을 넣었으면 이 정도 안전장치는 필요하겠지'란 결단이 엿보인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무기는 담백함이다. 온갖 말도 안 되는 억지 개그 대신 자조적인 아재 개그를 던지고 표정으로 욕(...)하는 <강철비>의 스탠스에 당혹스런 미소를 지었고, 쿠데타 과정과 개성공단 폭격씬의 교차 편집엔 진지하게 충격받았다. 그 퀄리티가 훌륭했을 뿐 아니라 민간인이 몰살되는 와중에 신파적 접근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한국의 액션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연출할 땐 투자자 혹은 스튜디오가 억지로라도 신파를 끼워넣게 마련이고, 놀랍게도 이런 투자자들의 생각이 대체로 적중해서 성공 비결이 되곤 한다. 그러나 <강철비>는 그런 것 없이 담담하게 현장을 비추고 공포에 사고회로가 마비된 대중의 모습을 여과없이 전달한다. 이 담백함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유지된다.


 다만, 이런 무기들을 무효화하는 단점도 확실히 존재한다. 한미동맹, 미일동맹에 대한 다급한 접근법이나 정형화된 듯한 '싸움 잘하는 북한 요원과 약간 나태해진 남한의 누군가'의 동맹 구조는 이제 좀 어이가 없다. 거대한 땅굴로 엄청난 숫자의 병력을 이동시키는데 정작 땅굴 입구는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라는 점은 실소가 나오는 요소. 한 명씩 빠져나오다가 실수로 걸리기라도 하면 살수대첩 시즌2 방영된다. 천만대군 몰려와도 전멸이다.


 참고로 <강철비>를 블루레이로 처음 감상하는 분은 메인메뉴 뒤편에 흐르는 영상을 보지 않길 권한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다.


 이하 스크린샷은 영화 <강철비> 정발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 누르면 커진다. 화질이 준수한 편인데, 그렇다고 최상급이라 하긴 어렵다. 영화의 규모를 고려했을 땐 조금 아쉬운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