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앨리스의 가시, 어물쩡하고 허술하게

즈라더 2019. 4. 7. 12:00

 복수극이 대세인 건 한국만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한계 탓인지, 공권력의 억압 탓인지 (공권력이 국민의 세금으로 움직인다는 걸 생각해보시라. 국민은 자신의 돈으로 자신을 억압하는 꼴이 되고 만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모르겠지만, 민중은 빼앗긴 무언가를 되찾기 위해, 혹은 분노를 풀기 위해 복수극을 원하고, 그런 민중의 가려움을 잘 긁어주는 복수극이 대체로 성공한다. 복수는 범세계적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고백>, <속죄>, 나카마 유키에 주연의 <아름다운 이웃>, <사키>, <우로보로스> 등 정말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우에노 주리 주연의 <앨리스의 가시> 그 중 하나다.



 우에노 주리 주연이란 점에서 일종의 '믿음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앨리스의 가시>는 그 기대를 깨끗하게 저버리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엔 합리적인 방식의 복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1화부터 무리수가 잔뜩 등장하며, 10년을 절치부심해서 준비한 것치곤 치밀함이 부족하다. 이 허점투성이의 복수에 등장인물들이 말린다는 점은 드라마를 진지한 코미디로 만들고 만다. 복수의 대상 가운데 저지른 악행에 걸맞은 결말을 맞이한 인물이 두 사람뿐이라는 점 역시 작품을 밋밋하게 만드는 요소다. 덕분에 이게 복수극인지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을 위한 개인적 생떼인지 알 수가 없다.


 꾸준히 등장하는 반전 역시 허술하기 그지없다. 뜬금포라 할 법한 최후의 반전만이 그나마 꾸준히 복선을 깔아놨다고 증명할 뿐이다. 무엇보다 반전이라는 것들이 모조리 주인공인 아스미(우에노 주리 분)의 허술함에서 비롯된 탓에 충격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다. 조금만 조심했어도, 조금만 신경 썼어도 눈치챌 수 있었을 것들을 그냥 흘려보낸 아스미의 스토리텔링이 작품을 망치는 원인이 되었다.


 복수극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복수의 결과물이다. <앨리스의 가시>에서 아스미의 복수는 완성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어린애 장난처럼 끝나고 만다.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꽃미녀로 변신한 우에노 주리 하나뿐. 다이어트가 최고의 성형이란 걸 증명하는 그녀의 비주얼 말곤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드라마다.



뱀다리) 이 작품이 2014년 작품이니까 4년 전에 쓴 글일 겁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