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다. <길복순>의 성적은 '아쉽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홍보에 온 힘을 다하던 넷플릭스 측에서도 한계를 느낀 건지 이제 홍보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오늘 공개된 지난주 넷플릭스 주간 순위에 나타난 <길복순>의 성적은 1960만 시간. 나름 나쁘지 않은 성적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길복순> 관련해서 전 세계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의 수, 각국 언론에 돌린 보도 자료의 퀄리티, 겁박하듯이 넷플릭스로 <존 윅>을 감상한 사람들에게 전부 추천하는 영화로 올려주는 무리수까지. 넷플릭스 측에서 들인 공을 고려하면 <길복순>의 성적은 처참하다. <길복순>은 넷플릭스 주간 순위뿐 아니라 플릭스패트롤에서도 경쟁작인 <머더 미스터리 2>...가 아닌, <머더 미스터리 2>의 전작 <머더 미스터리>조차도 이기질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길복순>의 영미권 평가가 그렇게 나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제 리뷰가 나름 쌓여서 집단 지성이 발현되기 시작하는 <길복순>의 로튼 토마토 성적은 77%. 팝콘은 더 높아서 84%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나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다. (<콜>, <20세기 소녀>의 평가가 더 높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리뷰의 수가 너무 적어서 배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건 <카터>인데, 토마토 35%에 팝콘 40%로 평론 측면에선 처참하게 무너진 작품이었다.
잘 생각해 보니 이렇게 철저하게 오락성으로 점철된 영화끼리 경쟁을 해도 평론은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 같다. 지금 <길복순>을 완전히 무너트린 <머더 미스터리 2>는 토마토 45%, 팝콘 54%로 <길복순>과 비교할 것도 없이 심각한 혹평에 시달리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길복순>이 <머더 미스터리 2>와 경쟁에서 완전하게 박살 난 건 작품 자체의 퀄리티 부족하거나 오락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주말에 킬킬대면서 먹고 있던 음식을 TV로 날릴 욕망에 시달리도록 하는 <머더 미스터리 2> 같은 스타일의 작품이 넷플릭스에선 더 먹힌다는 얘기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미권 유저의 성향이 오리지널 영화보다 외부에서 판권을 사 와서 서비스하는 작품들이 넷플릭스에서 더 흥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이따금씩 <모비우스> 같은 작품조차 10위 안에 들어오는 게 넷플릭스인데, 정작 넷플릭스가 만들어낸 걸작 영화들은 10위는커녕 100위 안에서도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시라.
어쨌든 <길복순>은 정말 야단이 났다. 공개된 이후로 <머더 미스터리>를 한 번도 넘지 못했다. 이런 결과를 위해서 200억이 넘는 대자본을 투자한 건 아닐 것이다. 넷플릭스가 <길복순>에 원했던 성적은 분명히 비영어권 영화 역대 순위 안에 들어가는 것일 텐데, 이게 가능하려면 2주 차부터 오히려 성적이 올라야 한다. 그러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선 오히려 영미권보다 평가가 좋지 않아서 위태롭기만 하다. 과연 <길복순>은 로튼토마토와 메타크리틱의 호평(67점)을 딛고 재도약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주간 순위 영어권 영화 차트는 <머더 미스터리 2>와 <머더 미스터리>가 1, 2위를 차지했다. 둘 다 성적이 썩 좋은 모양새는 아니라서 <길복순>이 이 두 작품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둘 가능성은 없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비영어권 영화 차트의 1위는 <길복순>. 볼수록 성적이 아쉽다. 과연 2주 차에 반등할 수 있을까?
뜬금없이 들어와 있는 <비상선언>이 흥미롭다. 높은 순위를 기록해서 신기한 게 아니라 <비상선언>만 한국어로 적혀 있어서다. 사실, <비상선언>은 한국에서 처참한 혹평에 시달린 것과 달리 외국에선 그럭저럭 즐길 만한 오락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인들의 0점 테러가 있었던 IMDB에서도 6.8점으로 꽤 괜찮은 점수를 달리는 중이다. 기왕 넷플릭스가 날개를 달아줬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길 기대한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영어권 TV 차트의 1위는 어김없이 <나이트 에이전트>. 순수하게 입소문으로 대박을 터트리는 중이다. 그래서 2주 차의 성적이 1주 차의 성적보다 훨씬 좋다. <다머>에 이어서 뜬금포 성공에 넷플릭스가 지화자를 외치고 있을 듯.
그렇게 <나이트 에이전트>가 대박을 터트린 한편에선 <섀도우 앤 본> 시즌 2가 몰락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시즌 3를 컨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비영어권 TV 차트의 1위는 <엄마, 우린 누구로부터 도망쳤던 건가요?>다. 아랍권을 꽉 쥐고 있다는 터키 드라마의 자존심처럼 나타나서 대단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엄마, 우린 누구로부터 도망쳤던 건가요?>에 밀려서 2위를 찍은 <더 글로리>는 2670만 시간으로 역시 기대치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이로써 <종이의 집> 시즌 3를 누르고 역대 순위 5위에 등극했다.
그 밖에 차트에 오른 한국 드라마로는 <일타 스캔들>, <신성한 이혼>이 있다. 10위에 오른 작품은 <너에게 닿기를>을 실사화한 일본 드라마다. 역시 망가나 아니메 원작의 일본 드라마에는 저력이 있는 것인가.
<더 글로리>는 기대치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기왕이면 반으로 뚝 나눠도 10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기대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건 <나이트 에이전트>라는 복병이 나타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거의 16부작이란 길이에 익숙하지 않은 영미권이나 유럽의 시청자들이 외면했기 때문일까. 물론, 지금 <더 글로리>가 거둔 성적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충분히 대박을 터트렸다. 그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화제성과 작품성의 드라마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