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우강호>를 처음 봤을 때는 삭제판이었다. 삭제판인 줄도 모르고 감상했지만, 그 삭제판만으로도 꽤 괜찮았던 기억이다. 오랜만에 '수정주의'라고 할 만한 무협을 만나봤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적인걸>이 전형적인 서극 스타일의 무협이었다면, <검우강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정한 강호' 그 자체.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군상의 일면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그래서 참 여러 이유로 참 아끼는 영화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내가 봤던 <검우강호>가 삭제판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진가신 감독의 <무협> 때도 삭제판을 보고서 화가 잔뜩 났던 적이 있지만, <검우강호> 때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삭제된 장면의 중요성 때문이다. 무려 서희원(구준엽과 결혼해서 국제적 화제가 된 그 누님이 맞다.)의 장면이 대거 삭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대충 알 만했지만, 한참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서희원의 미모를 날려먹다니 어떻게 그런 만행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아래로 그런 <검우강호>의 무삭제판 블루레이 오픈 케이스.
참고로 슬리브에 있는 사진은 거짓이다. 저런 장면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말한 것처럼 수정주의 무협이다. 인물 간의 배신과 배신을 소재로 삼은 영화지, 장대한 전쟁씬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
<검우강호> 블루레이엔 화질 오류가 있다. 해상력은 매우 준수한 편이지만, 윤곽선의 도트가 튀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화질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기를 권한다.
<검우강호>는 추천할 만한 영화다. 다만 주제 의식이 굉장히 불친절하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 도교 철학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영화임에도 이렇다 할 설명이 없어서 등장인물들의 행동 경위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다. 나도 몇몇 장면은 이해가 잘 안 가서 당시 장면들을 해석해준 분의 글을 봐야 했다. 물론, 그런 불친절 같은 건 대충 잊고 봐도 이야기의 흐름을 잡는 데엔 전혀 문제가 없으니 큰 걱정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