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보바 펫의 여정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북 오브 보바 펫>은 만달로리안이 나오는 회차부터 봤다. 따라서 나는 <북 오브 보바 펫>을 제대로 본 게 아니며,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다. 그저 떠오르는 것 몇 가지를 끄적여보는 것뿐이다.
1. 5화와 6화는 만달로리안과 그로구가 주인공이다. 이게 그냥 단순하게 비중이 크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예 두 사람의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보바 펫은 아주 잠깐 나온다. 스핀오프라고는 해도 분명히 보바 펫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인데 이래도 되나 싶다. 7화부터는 보바 펫이 나름 주인공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만달로리안의 비중도 만만치 않고, 중요한 순간에는 만달로리안의 파티원(!)이 나타나는 등, 누군가에게 '<만달로리안> 시즌 3가 나왔어'라면서 보여줘도 충분히 속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정도다.
2. 클라이맥스의 스케일이 작다. 랭커의 VFX에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스케일이 너무 작아서 이걸 정말 타투인의 운명을 걸고 벌어지는 전쟁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타투인이면 지저분한 행성이긴 해도 상당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의 전쟁이 소규모 조폭들의 패싸움 수준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게다가 타투인은 <북 오브 보바 펫>으로부터 수십 년 뒤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에서도 무법천지의 위험한 곳으로 간주된다. 그런 곳에 벌어진 전쟁이 소규모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 만달로리안의 능력이 꽤 한심하게 나온다. 정확하게 말해서 7화에서만 한심하다. <북 오브 보바 펫>에 처음 등장하는 5화에선 다크 세이버로 여럿을 학살하고 멋진 결투를 벌이는 등 만달로리안 스타일의 액션이 잔뜩 나오지만, 7화에선 만달로리안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치명적 순간을 세 번이나 맞이한다. 그 치명적 순간을 헤쳐나오는 방법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가까워서 차라리 루크 스카이워커를 데려오지 그랬느냐는 생각마저 든다.
4. <만달로리안> 시즌 3가 내년에 나온다. <북 오브 보바 펫>은 그 전에 반드시 봐야 하는 작품이다. 안 보면 이야기가 이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만달로리안> 시즌 2.5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고스란히 진입 장벽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안 그래도 <만달로리안>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6.5>나 다름없는 이야기라 장벽이 있는 편인데, 그걸 또 스핀오프로 이야기를 끌고 감으로써 장벽이 더 높아졌다. 부디 <아소카>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기능해서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게 아니라 유입을 늘리는 작품이 되어주길 바란다.
5. <북 오브 보바 펫> 5화~7화를 통해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몸으로 하는 싸움 연출에 특화된 감독이라는 걸 확인했다. 생각해보면 존 파브로가 그를 <북 오브 보바 펫>의 감독으로 낙점한 이유 중에 <만달로리안> 시즌 2의 보바 펫 등장 에피소드를 연출했다는 점이 있을 것이고, 그 에피소드에서 보바 펫은 총질보단 창질을 더 많이 했다. <북 오브 보바 펫>의 클라이맥스를 마무리하는 액션 역시 총이 아니라 창이었다. 1화~4화에선 어땠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역시 보바 펫이란 캐릭터에 매력을 느낄 수 없어서 직접 볼 생각까진 들지 않는다.
6. 이로써 내년에 <만달로리안> 시즌 3를 볼 준비는 다 마친 것 같은데,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다.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