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순위에서 사라졌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라이벌도 없었던 시기를 골라 공개했던 <20세기 소녀>가 거둔 성적은 분명히 아쉽다. 국뽕 유튜버들이 괴상망측한 수식어로 '한국을 대표하는 청춘 멜로가 생겼다'라고 찬사를 늘어놓다가 후속 영상 없이 언급이 싹 사라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20세기 소녀>는 망하진 않았어도 기세 좋게 유럽에서 흥행을 시작했던 초반부의 기대를 배반하는 3주 차를 맞이했다.
물론, 모든 작품이 대박을 터트릴 수는 없는 법이고, 특히 역대 순위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성공작이 아니라는 식의 접근은 옳지 않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20세기 소녀>는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아쉬움은 아마도 <20세기 소녀>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지금 부진하고 있는 케이 컨텐츠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지금 케이 컨텐츠 중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는 작품은 <20세기 소녀>를 제외하면 <슈룹> 정도인데, 이것도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에 비교하면 성적이 평범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작품이 한꺼번에 두각을 드러내던 이전과 달리 오로지 <슈룹> 하나만 성장세라는 것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로 넷플릭스 주간 순위 차트를 모아본 것.
넷플릭스 주간 순위 영어권 영화 부문의 1위는 당연하게도 <에놀라 홈즈 2>가 차지했다. 이번에는 셜록의 비중이 꽤 늘어났다고 하던데, 그건 헨리 카빌이 <위처>로 네임밸류를 키웠기 때문인 걸까. 빨리 봐야 한다는 생각만 수도 없이 하고 볼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있다. 보게 된다면 <에놀라 홈즈>부터 시작해서 두 편을 한꺼번에 달릴 생각이다.
아래에 있는 <워>와 <오블리비언>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아닌, 여러분이 아시는 그 영화가 맞다. 이연걸,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워>와 톰 크루즈 주연의 <오블리비언>이 10위권에 진입한 것. 영어권도 영화 쪽은 꽤나 빈집이다.
<오블리비언>은 개인적으로 한국에 서비스하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 왠지 HDR을 지원해줄 것 같아서다. <오블리비언>의 그 아름다운 영상을 HDR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기회가 생긴다면 참으로 감사하겠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비영어권 영화 부문의 1위는 넉넉하게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차지했다. 뭐, 애초에 상대할 수 있는 작품이 없다. 넷플릭스에서도 작정하고 밀어주는 데다 작품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비영어권이지 미국과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 원작 소설이고, 독일어 영화기 때문에 유럽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이미 2주 차에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화 부문의 역대 순위 안에 들어갔다. 덕분에 한국 영화 <카터>는 10위로 추락.
<20세기 소녀>의 수치는 1주 차 수준으로 돌아왔다. 플릭스패트롤의 일일 순위 10위 안에 들어가 있기는 해도 그래 봤자 한계는 명백하다. 역대 순위 근처에도 못 갈 것이 분명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역대 순위에 들어가야만 성공작이 되는 건 아니지만, 최근 케이 컨텐츠들의 부진 때문에 <20세기 소녀>라도 역대급 성적을 거둬줬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영어권 TV 부문의 1위는 <매니페스트> 시즌 4다. 미스터리 스릴러로 이렇게 오랜 기간 인기를 누리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넷플릭스의 <로스트>라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듯. 난 아직 안 봤다. 떡밥물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낚시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미국 드라마에 지쳐버린 데다 몇 시즌까지 나올지 알 수 없는, 클리프행어가 난무할 작품에 몰입하고 싶지 않아서다. 완결되면 그때나 한 번 생각해보련다.
함께 공개된 영국 드라마 <인사이드 맨>도 꽤나 호평이다. 답답한 등장인물들을 제외하면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볼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 그래서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모양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은 기대보다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 못하다. 주간 순위 성적도 그냥저냥이지만, 플릭스패트롤의 일일 순위도 상당히 떨어졌다. 추이를 보아하니 다음 주 순위에선 10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비영어권 TV 부문에 들어간 한국 드라마는 <작은 아씨들>, <슈룹>,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총 세 편이다. 다만 세 편 모두 성적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작은 아씨들>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끝난 지 한참 지난 작품임에도 버티는 중이니 선전 중이라 할 수 있겠지만, <슈룹>은 김혜수를 비롯해 화려한 배우진을 자랑하는 텐트폴임에도 쉽게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실, <슈룹>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다. 아시다시피 <슈룹>은 중국 고장극에서나 볼 법한 대사와 용어가 사용되어 중뽕에 물든 작가가 만든 작품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무려 '태화전'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바가 있다. 조선 역사에서 태화전이란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에 존재했다. 주의가 필요한 작품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케이 컨텐츠의 다음 타자는 <썸바디>. 예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절대 만만한 작품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무려 <해피엔드>, <은교>의 정지우 감독이 연출하는 드라마다. 본인이 직접 각본까지 손댄 만큼 본인의 색깔이 깊게 배어 있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최근 <다머 - 괴물: 제프리 다머 이야기> 덕분에 영미권과 유럽 사람들에게 살인마의 이야기가 익숙한 만큼 <썸바디>도 그쪽에 수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쯤에서 넷플릭스가 <썸바디>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홍보를 할 건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언제나처럼 아시아권과 중동, 남미 쪽에만 홍보할까? 아니면 유럽과 영미권을 아울러서 제대로 홍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