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일본이 한국에 사과하고 보상금까지 줬다고? 실상을 파헤쳐보자

즈라더 2021. 11. 15. 12:30

 일본은 사과를 했고 돈까지 줬다.


 이는 일본인과 일본을 사랑하는 한국인의 일관된 주장이다. 겉핥기식으로 바라보면 사실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70년. 위 문장과 같이 단순한 사실만 바라본 사람이 늘어갔고, 일본이 사과를 안 했다고 말하는 윗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쿨병'에 사로잡힌 사람도 늘어갔다. 어쩌면 이런 망각이야말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데 사용될 최고의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참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서 외교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지금 시점에 써먹을 도구는 아니다.


 1년에 750만 명. 한국인 750만 명이 일본 여행을 떠났다. 물론, 이게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매우 가까운 나라라는 점이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어쨌든 750만 명이나 찾았다는 건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의 무례조차도 악감정의 희석을 막지 못 했다는 증거다. 아마 일본이 한국에 무역 전쟁을 건 것도 일본에 750만 명이나 찾아왔던 한국 국민이 먼저 들고일어나 문재인을 끌어내릴 거라고 봤던 거겠지. 지금에 와서야 그게 착오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어차피 일본인들은 '사실'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한 작자들이다.


 무역 전쟁이 시작되고 2년이 지났다. 많은 사람의 머리가 조금 식은 모양이다. 최근 틱톡 등을 통해 다시금 퍼져나가는 일본에 대한 조건 없는 호감을 보면서 이참에 조금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사과를 했고 돈까지 줬다는 주장에 대해서 사실 관계를 조금이나마 파악해보고자 한다. 

 

고노 다로
고노 다로 - 한일 무역전쟁의 키패스는 이 양반이 대부분 날렸었다


 일단, 일본이 한국에 줬다는 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일본이 줄곧 주장하는 것은 '우리는 사과하는 의미로 돈을 줬다'라는 것인데, 이 돈은 3가지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는 독립 축하금, 두 번째는 차관, 세 번째는 (차관과 연관된) 투자. 사과하는 의미에서 보상을 한 게 아니라 독립 축하금을 줬다. 눈 가리고 아웅 일본식 화법이다. 독립을 축하는 하지만 우리가 잘못한 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자민당은 자신들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포지션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또한, 차관은 말 그대로 차관이다. 빚이다. 세 번째의 투자도 말 그대로의 투자다. 이 투자를 바탕으로 한일 관계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일본의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이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면서 투자한 금액의 수십 배에 가까운 돈을 챙겨갈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이 그냥 돈을 준 건 독립 축하금이 전부다. 일본 쪽에서 주장하는 그 막대한 금액 중 대부분은 '차관(빌려준 것)', '투자(일본 자본과 기업의 진출)'이며, 빌려주고 투자한 것으로 한국 경제에 빨대를 꼽고, 한국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덕분에 막대한 금액을 회수해갔다. 한국에 차관을 대주고 투자한 나라는 일본뿐이 아니었으므로 이 돈을 가져다가 그러니 그 금액을 온전히 사과하는 의미였다고 받아들이는 건 멍청한 일이다. 


 이렇게 정리해두고 나면 그 다음은 설사 독립 축하금을 사죄를 담은 보상금이라 치더라도 일본은 '무엇'을 사과했느냐가 되겠다. 독립 축하금을 줘서 한국에 사과를 했고, 한일 양국의 은원은 모두 해결되었다는 사고방식의 일본인들에게 '독립 축하금으로 뭘 사과했느냐'라고 물어보면 재미있을 거다. 일본이 한국에 뭘 잘못했기에 사과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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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총리들 중에서 사과한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일본식 사과의 진면모를 맛볼 수 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나라의 주권을 빼앗아간 것에 대한 사과라면 이렇게 나와야 한다.


'申し訳ございません.'


 직역하자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도인데, 일본의 사과 표현 중에선 최상급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본 총리들의 사과라는 건 대체로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유감입니다.'


 가끔 이 뒤에 '思います'가 붙어서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가 되기도 했다. 일본 사회가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사회라는 걸 아는 사람은 이 思います가 뭘 의미하는지도 알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누군가가 '왜 유감이라고 했느냐! 일본의 자존심을 구기지 마라!'라고 말하면 '난 유감이라고 한 적 없다'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치기 위함이다. 유감이면 유감이지 무슨 의견을 얘기하는 것처럼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라니 얼마나 어이가 없나. 이런 사과를 해놓고 뒤로는 야스쿠니 신사에 봉헌하거나 참배를 한다. 이걸 사과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나마 일본 정부가 사과하는 태도를 보인 건 3년 정도에 불과했던 민주당 정권뿐이었고, 그마저도 중도좌파 특유의 마인드가 작용한 것이었다. 


 여기서 더 웃긴 일은, 평상시 위와 같이 책임회피성 성향이 강한 사과만 하던 자민당도 대외적인 '담화'를 발표할 땐 깊은 반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세계인에게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을 어필한다는 것이다. 가끔 일본 넷우익들이 '일본은 평화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며 꺼내 드는 게 바로 담화문. 그런 담화를 발표해놓고 바로 '우린 잘못한 거 없는데?'라고 말하는 게 바로 일본의 특징이다. 1000년을 이어온 혼네와 타테마에의 공식이 일본 정치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담화에 대해서도 '뭘 잘못했느냐?'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하거나 한국을 대상으로 한 담화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담화문을 잘 살펴보면 고노 담화를 제외하면 주어가 생략되고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피해를 본 나라에 사과'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일본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로 피해를 봤다고 여기지 않는다.

 

기시다 후미오
과연 기시다 후미오는 어떤 식으로 한일관계를 풀어갈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채로 하는 사과는 받는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불쾌한 일이다. 사람 관계로 예를 들자면, 살인범이 피해자의 자식에게 반성하는 태도 없이 사과를 했을 때 그걸 사과라고 여길 수 있을까?


 '어쨌든 합의금(독립 축하금)을 줬으니 된 것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합의금 줬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제대로 된 사과조차 안 해도 된다는 태도는 더 큰 싸움을 부른다. 즉,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뭘 잘못해서 사과하는지 모른다. 왜냐, 일본은 잘못한 게 없다고 여기기 때문. 식민지 근대화론 이전의 문제다. 일본은 (자신들이 발표한 담화 내용과 달리) 한국을 비롯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전 세계의 식민지들에 대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마저도 마찬가지로, 미국이 먼저 수출 규제를 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한 것에 불과하고, 되려 미국이 핵으로 전쟁을 끝낸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미국이 강하니까 요구할 수 없지만, 언젠가 꼭 미국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닌 게 일본 정부다. (본격, 주인을 무는 개)


 잘못한 게 없다고 여길 뿐 아니라 일본을 피해자라고 여기는 건 자민당 정권의 기본적 스탠스. 내가 꾸며낸 게 아니라 일본 국회방송 질의에서 수도 없이 나온 것들이다. 미국이 이런 일본 자민당의 사고방식을 두고 크게 딴지를 걸지 않는 것은 그저 일본이 주인에게 복종하는 개처럼 핥아대니까 봐줄 뿐이다. 어쨌든 겉으로는 담화문을 발표해서 반성한다 어쩐다 하니까.


 과거 고노 다로는 일본 국회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자민당은) 한일기본조약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생각합니다'는 책임 회피성 추임새. 그러니까 독립 축하금이란 '잘못한 건 없지만 X랄 할 것 같으니까 먹고 떨어져'라면서 준 합의금이란 얘기다. 그렇게 독립 축하금과 함께 차관해주고 투자 감행하면서 한국으로 이득 본 돈이 얼마나 컸는지, 일본 경제인들은 일본 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로 한국 전쟁과 한일기본조약으로 한 투자가 잭팟을 터트린 것을 종종 언급한다. 심지어 그렇게 얻은 이득이 자칫 손해로 넘어갈 수 있었던 IMF 당시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한국에서 발을 뺀 게 일본이다. 즉, 일본에겐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다.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합의금 줄게. 원한다면 사과도 해주지."


 일뽕들은 실생활에서 누군가에게 잘못해놓고 똑같이 말해줘보라. 그때부턴 전치 몇 주가 나오는지에 대해 의사와 논의가 필요한 소송전이 시작될 것이다.


뱀다리) 일본어가 어느 정도 되는 분들은 일본 국회방송을 꼭 보시라. 한국 국회방송이 액션 영화라면, 일본 국회방송은 고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