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간 틈이 나는 대로 걷기 영상을 보고 있다. 무슨무슨 워커라고 해서 그냥 거리를 걷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 채널을 본다. 우한 폐렴이 창궐한 뒤 걷기 영상을 찍는 유튜브 채널이 엄청 늘어났다. 밖에 나가는 걸 자제하는 시기니 만큼 대리만족을 위해 거리를 걷는 영상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공급과 수요가 적절히 맞아떨어진 셈. 그리고 그런 채널 중 4K HDR 수준의 영상을 올리는 채널만 본다면 최고봉은 중국과 일본이다.
중국은 정부의 아예 국책으로 최고급 카메라를 동원해 거리를 찍는다. 내가 발견한 채널만 4개 정도 된다. 물론, 내가 발견한 것만 이것뿐이고 더 많을 것이다. 이 채널들의 공통점은 들고 있는 장비 자체가 지나칠 정도로 비싸다는 점이다. 국책이라곤 해도 저렇게 비싼 장비를 들고 찍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그 만큼 영상의 질이나 음향은 기가 막히도록 좋다. 그렇게 찍은 방대한 용량의 데이터를 유튜브가 막혀 있는 중국에서 올린다. 모른 척해주기도 참 힘들다.
일본은 개인용 카메라에 있어서 40년 전부터 세계 최강 소리를 들어온 나라답게 일반인이 소니나 캐논의 장비를 들고 찍은 영상이 많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운영하는 채널 영상을 보면 처음에는 평범하게 카메라를 짐벌을 연결해 찍었는데, 지금은 카메라도 업그레이드 했고 언뜻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보니까 무슨 중장비를 한 것처럼 보이더라. 시네마용 스테디 캠이라도 든 줄 알았다.
어쨌든 일본은 좋은 화질의 걷기 영상이 많다. 중국 만큼의 비싼 장비를 쓰진 않았어도 야간 영상까지 깔끔하게 찍어낼 수 있는 고급 사양의 카메라와 렌즈로 찍은 채널이 정말 많다. 채널 숫자만 보면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은 듯도. 그냥 걷는 영상뿐 아니라 전차를 찍은 영상이나 그저 항구에 크루즈선이나 화물선이 도착하는 광경을 찍는 덕후스러운 영상도 많다. 말만 4K HDR이 아니라 제대로 HDR 그레이딩을 하는 채널도 꽤 되니 검색해보시라.
아시아의 나머지(?) 부국인 한국, 대만, 싱가폴은 걷는 채널 자체는 많지만 중국과 일본처럼 좋은 화질로 찍은 채널은 별로 없다.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들이라 4K HDR이어도 화질이 엉망진창이다. 중국, 일본의 것과 비슷한 수준의 채널은 한국과 대만에 딱 하나씩 있는데, Seoul Walker와 Taiwan Walker. 다만 대만은 IT에서 세계 최강을 다투는 나라답게 방송사에서 직접 4K, 8K HDR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준다. 일본의 NHK에도 비슷한 채널이 있지만, NHK가 방송과 관계없이 일본의 자연이나 도시를 타임랩스로 짤막하게 담는 채널을 만든 것과 달리 대만은 실제 방영된 프로그램을 그대로 올린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 참 아쉽다. 일본보다도 더 고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