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반스.
캐스피언 왕자로 유명하다. 호리호리한 체형과 사기적인 비율, 어이없을 만큼 잘생긴 얼굴,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목소리를 지닌 배우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일단 외모만 보면 어디에 가서도 안 진다. 날고 기는 꽃미남 배우들과 나란히 서 있어도 혼자서 튄다. 혼자서 여배우들도 이겨 먹는다. 그가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지나치게 잘생겨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근사한 배우다.
물론, 실제로 벤 반스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지 못한 이유는 작품을 보는 눈이 너무 없어서다. 연기력이 조금 부족해도 작품을 잘 만나면 상관없이 성공하는데, 벤 반스는 연기력도 부족하고 선택한 작품도 엉망이었다. 무엇보다 판타지 장르에 빈번히 나왔던 게 걸림돌이었던 것 같다. 아시다시피 판타지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는 모 아니면 도다.
그런 벤 반스가 커리어 반등을 이끌어낸 계기는 웨스트월드와 퍼니셔다. 웨스트월드 시즌1에서는 한심함의 절정을 연기했고, 시즌2에서는 댄디한 내비게이터를 연기했다. 퍼니셔엔 프랭크 캐슬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자, 최악의 적인 빌리 루소로 나와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제 그는 과거의 화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악랄함과 중후함을 동시에 갖춘 이중적 매력을 풍기고 있다.
최근 감상한 섀도우 앤 본에서도 벤 반스는 중후함을 한껏 뽐낸다. 그리고 필요한 순간에는 섬뜩한 눈빛으로 극을 장악한다. 대체 왜 이런 영어덜트 판타지에 벤 반스가 '조연'으로 나왔는지 의문이었는데, 보고 나니까 대충 이해가 간다. 최근 그가 일궈낸 새로운 이미지에 찰떡 같이 어울리는 역할이다. 그냥 지금의 벤 반스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섀도우 앤 본이란 작품 자체에 대해선 짤막하게 언급하고 나중에 조금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련다. 결론부터 말해 그렇게 훌륭하다고 하긴 어려운 드라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알리나와 키리건의 로맨스와 스릴 경계에 서 있는 관계성이지만, 이건 제인 에어 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반복되어 개성과는 거리가 먼 로맨스 서술 방식이다. 또한, 오로지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작품이라서 '작품성'이 좋다고 말한다면 '영상' 대중문화의 가치를 폄하하는 기분이 들 것 같다. 그저 책을 영상으로 '축약'해서 옮겨놓은 것 외에 뭐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런데 재미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