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원 연장, 리런칭 실패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생긴 여유(?) 시간에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지구의 밤'을 봤다. 작품 자체를 찾아서 본 건 아니고, 그냥 HDR 톤매핑하는데 필요한 어두운 영상을 찾다가 발견해서 킵해두고 새벽에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기 전까지 보는 식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매회 내레이터의 멘트가 너무 웅장해서 피식 웃게 되는데,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밤의 생태계를 최신! 기술!의 저조도! 적외선! 고감도! 카메라로 볼 수 있습니다.'하는 식이다. 헛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대단한 기술임엔 틀림이 없다. 디지털 촬영 기기의 발전, 군사용 열탐지 센서의 발전 등으로 이전엔 꿈도 꿀 수 없었을 영상들이 펼쳐진다. 살아있는 지구 시즌1 당시만 해도 야간 촬영을 위해서 엄청난 조명을 쏴야 했던 탓에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말이 많았었다. 기술의 발전은 찬란하다.
최신 기술을 이용해서 보는 밤의 생태계 자체는 매우 흥미롭지만, 영상미 측면에서도 흥미롭다고 하긴 어렵다. 단 한 편을 빼고. 도시의 밤을 다루는 '잠들지 않는 도시'가 그것인데, 일단 급속도로 번지는 도시들에 적응해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HDR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그레이딩이 기가 막힌다. 다른 에피소드도 HDR로 보는 게 좋지만, '잠들지 않는 도시'는 반드시 HDR로 봐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영상을 제공한다.
예전에 누군가가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가 진국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여럿 봤는데, 딱 마음에 든다하는 다큐멘터리는 이 '지구의 밤' 하나뿐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구의 밤' 중에서도 '잠들지 않는 도시' 에피소드는 꼭 한 번쯤 보시길 권하고 싶다. 되도록이면 HDR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