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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루타, 흑태양 731을 미성년자에게 보여준 교사

즈라더 2021. 5. 27. 06:00

 난 아직도 중국에서 만드는 2차 세계대전 영화를 조금 무서워한다. 사상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감상한 중국의 2차 세계대전 영화는 마루타 부대를 다루는 영화였다. 당시엔 제목이 '마루타'였던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실제 제목은 '흑태양 731'이라고 한다.


 흑태양 731은 내용이라 할 만한 게 거의 없다. 당시 731 마루타 부대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생체 실험을 영상으로 담은 게 전부다. 동물의 내장이나 병원에서 얻은 뼈 등을 이용해서 고어씬을 묘사하고, 그걸 전부 아주 밝은 조명 아래에서 고스란히 비추다 보니까 겨우 14살이었던 내겐 실제인지 가짜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냥 실제 생체실험을 눈 앞에서 보는 듯한 기분에 구역질이 났는데, 자막조차 없던 무삭제판(당연히 불법) 비디오를 가져온 사람은 다름이 아닌 학교의 역사 선생님이었다. 그저 비디오 수업으로 알고 있던 학생들은 공부 안 한다고 신이 잔뜩 났다가 중간부터 하나둘씩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그걸 보며 역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게 바로 일제가 저지른 짓이다"라고 말했다.

 

쥐징이
포스터 들고 오는 것도 무서워서 쥐징이 사진으로 대체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 속 생체실험은 실제 마루타 부대에서 저질렀던 걸 그대로 묘사한 거니까. 그러나 그걸 과연 14살 짜리 애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아주 쨍쨍한 조명 아래에서 생동감 넘치게 찍힌 고어씬들은 성인이 봐도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라 장담한다. 지금도 가끔 꿈에서 영화의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꿈에서 깨면 그날 밥은 다 먹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계속해서 울던 친구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그 역사 선생님을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일제의 악행을 몸서리치도록 느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미성년자에게 보여줘도 되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소식을 들은 학부모님들이 교무실에 왔다갔다하더니 역사 선생님이 바뀌었다. 


 이런 이유로 난 여전히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중국 영화가 무섭다. 난징!난징!이나 진링의 13소녀를 보기 전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두 영화는 조금 잔인한 면이 있긴 해도 성인이라면 적당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영화 리뷰어로 살면서 온갖 종류의 고어물을 다 봤고 몇몇 작품은 반복 감상도 했지만, 흑태양 시리즈를 비롯해 마루타 부대를 다룬 영화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