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드라마 빈센조, 코믹한 터치로 덮은 살육극

즈라더 2021. 5. 24. 06:00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며 넷플릭스 월드와이드 차트에서 10위 밖으로 나갈 줄 모르던 한국 드라마 빈센조. 열혈사제로 먼치킨물에 깊은 조예(!)를 뽐냈던 박재범 작가의 신작으로, 전작들보다도 선을 훌쩍 넘은 먼치킨물이다.


 일단, 드라마의 주인공인 빈센조 카사노는 '정점'이다. 인물 구조의 먹이사슬 피라미드를 그릴 때 빈센조 카사노는 꼭대기에 적힌 인물이며, '금괴'라는 리미트를 걸어서 능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컨트롤한다. 그리고 이 리미트가 깨지는 순간부터 드라마는 말 그대로 순수 양학 먼치킨물로 승화(?)한다.

 

거의 송중기 원맨쇼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처단한다는 홍보 문구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빈센조에서 처단의 대상이 되는 악당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저런 사고방식으로, 저런 목표를 가진 악당이 없다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악당들은 법을 악의적으로 이용할 순 있어도 법의 제한을 뚫지는 못한다. 그러나 빈센조의 악당들은 일단 법의 제한 같은 건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짙은 데다 본인들이 너무 강력해서인지 누군가 범접할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도 안 한다. 덕분에 빈센조가 가진 폭력의 힘 앞에 손쉽게 무너진다.


 갈등이 나와도 1회 안에 풀리는 빈센조의 구조는 한국 드라마가 최근 추구하는 '빠른 갈등, 빠른 해결'의 레퍼런스를 따른다. 단, 주의하도록 하자. 빠른 해결을 위해서 빈센조가 택한 방식은 대단히 가볍다. 일단, 빈센조 쪽이나 악당 쪽이나 '보안'의 개념이 아예 존재하질 않으며, 사실상 각종 물건들을 공유하다시피 한다. 어차피 빈센조가 총만 가져다 들이대면 끝나는 구조니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걸 수도 있지만, 극이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걸 꺼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 보안을 뚫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여러 사태들은 극을 코믹하게 그려낼 수 없게 할 테니까. 그러나 보안 개념이 없다는 점 탓에 전개가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여빈도 매혹적으로 연기하긴 했지만 사실, 낙원의 밤에 나온 전여빈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던 게 사실이다. 짙은 화장이 이목구비의 매력을 살짝 반감시키더라.


 마찬가지로 박재범 작가의 전작들보다 훨씬 가벼워진 분위기는 작품이 살벌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빈센조는 빌런 쪽이나 금가 프라자 쪽이나 빈센조라는 근사한 인물에 홀딱 반해서 질질 끌려가는 코믹한 장면을 잔뜩 연출해놓는 바람에 캐릭터 중심이 되는 양산형 웹툰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 대체 얼마나 살벌하길래 이런 추측을 하느냐.


 전직 검사가 현직 변호사를 사고로 위장해 살해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몇 번씩이나. 그녀는 아예 살인청부업자들을 몰고 다니며 당연하다는 듯 필요없는 자들을 모조리 죽인다. 


 현직 기업의 회장이 검사를 패죽인다. 그냥 건방지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역사에 전무후무할 권력 집단, 영원히 깨지지 않을 압도적 방어력을 자랑하는 검사를 기껏 대기업의 회장 따위가 하키 스틱으로 냅다 패죽인다니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빈센조도 아주 많이 죽인다. 단순히 죽일 뿐 아니라 경호원들을 총으로 부상입히는 일도 일상다반사. 병원에서 총기로 인한 부상을 치료할 때 분명히 문제가 되었을 테지만, 빈센조의 세계관에선 익스큐즈.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곽동연. 아마 다음 작품에선 솔로 주연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이 몰살당하는 데다, 드라마 시작 부분에선 피해자의 처지에 있던 금가 프라자 소시민들도 중반부부터는 살인 방조자 혹은 공범자가 되어버리는 딥다크한 내용이다. 지나칠 정도로 코미디에 집중한 건 살벌한 내용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라고 밖에 생각되질 않는달까. 실제로 마지막 무렵에 죽는 인물들의 면모와 과정을 보면, 극을 코미디로 만들지 않았을 경우 핏물 흥건한 복수극으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졌던 이탈리아, 아일랜드 계열 이민자들의 마피아 영화 역시 떠올릴 수 있을 내용이다. 괜히 빈센조 카사노를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으로 그려놓은 게 아니다.


 개인적으론 빈센조에서 대리만족을 느끼진 못했다. 일단 빈센조라는 캐릭터가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먼치킨이라 몰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볍게 즐길 오락물로서는 꽤 괜찮은 작품이라는 것엔 동의한다. 살벌한 내용을 코믹한 터치로 그려냈다는 측면이 먹혀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