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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판으로 배트맨 대 슈퍼맨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

즈라더 2021. 5. 18. 12:00

1.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마사' 한 방에 갈등이 일시 해결된 것을 두고 오히려 되묻는 여성팬을 봤다.


 "아니, 이게 왜 이상해요? 영리하고 감동적인데?"


 영화를 평소 안 보는 사람들이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닌 사람이라서 신기하다. 나처럼 대사의 뉘앙스에 집중해서 '해석'해서 내린 평가가 아니라 그냥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스탠스. 


 "마사 문제로 욕을 엄청 먹었어요"


 라고 말해주자,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래요? 왜 그러지?"


 "님아가 좋아하는 데드풀2에서도 마사 드립을 조롱했는데, 기억이 안 나요?"


 "아 그게 이걸 조롱하는 거였어요? 그러고 보니까 느금마사 기억나네요. 그런데 정작 보니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이게 왜 이상해요?"

 

 최근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이 화제가 되자 그간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보지 않았던 사람이 보고 감상평을 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 만큼 본 사람이 적은 영화란 생각에 조금 안습. 심지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봤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은 안 봤다는 사람도 있더라. 그 사람에게 왜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실망을 크게 한 마당에 혹평 세례를 받았던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보기가 겁이 났다던가. 

 

슈퍼맨이 누명을 쓰는 핵심적 과정이 극장판엔 누락되어있다

 

2.
 지금 시점에 배트맨 대 슈퍼맨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얼티밋컷' 그러니까 한국엔 '확장판'이라 공개되어 있는 버전을 본다. 이 확장판이 사실 오리지널 판본이다. 극장판 2시간 반짜리 배트맨 대 슈퍼맨이 개봉하기 전에 이미 CG까지 완성되어 R등급을 받아놓았던 판본. 3시간과 R등급 때문에 워너에서 오리지널로 개봉하는 걸 반대했고 그래서 30분을 다시 편집해서 만든 게 극장판이다. 즉 선후관계가 다르다. 영화를 다 만들어놨는데(확장판) 워너가 2시간 반으로 자르라고 해서 재편집(극장판)한 것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극장판을 보고 확장판을 본 사람보다 확장판만 본 사람들의 반응이 더 좋다. 영화 리뷰 사이트든, 블로그든, 유튜브 리뷰든, 유튜브 리액션이든 간에 다른 거 아무것도 안 보고 맨 오브 스틸과 배트맨 대 슈퍼맨 확장판만 본 사람들은 대부분 왜 그렇게까지 욕을 먹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중간에 마사가 어쩌고 할 때는 대부분 벙찐 상태로


 "이게 뭐야? 그렇게 싸우더니 마사 하나로 끝?"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건 그대로지만, 마사 부분이 엉뚱하긴 했어도 영화는 적당히 재미있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쉬운 점이 존재해도 즐길 거리로선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이 캐릭터의 역할 역시 상당부분 삭제

 

3.
 배트맨 대 슈퍼맨이 극장에서 개봉했던 당시 들었던 비판은 대부분 다음과 같았다.


 "무슨 스토리 연결이 하나도 안 되냐? 뭐 이따위 영화가 다 있어?"


 이런 비판은 평론가나 대중에게서만 나온 게 아니다. 셀럽들도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본 뒤 "이야기 해석이 잘 안 된다. 이걸 어떻게 짜맞춰야 하는 거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연예계 동료의 일이기도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셀럽들조차 당황해버린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잭 스나이더가 배트맨 대 슈퍼맨을 30분 삭제해서 재편집할 때 듬성듬성 구멍이 날 수밖에 없는 스토리를 보강하기 위해 동원한 방법은 영상 내러티브 중심으로 편집해서 영상의 디테일에 집중한 사람들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해보자는 쪽이었다. 그래서 영상 내러티브에 집중한 사람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당혹스러운 작품일 수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이건 영상 내러티브를 읽어내지 못한 사람들이 틀린 게 아니다. 30분을 삭제해서 극장에 개봉하도록 강요한 워너 브라더스가 문제지.


 이런 탓에 극장판을 보고 확장판을 본 사람들은 극장판의 잔영이 남아서 쉽사리 호평을 하지 못하지만, 확장판을 먼저 본 사람들은 비판을 하더라도 그럭저럭 즐길 만한 영화라는 점은 대체로 동의한다. 극장판과는 다르게 영상에 집중하지 않아도 스토리가 확실히 이어지니까. 마사를 이야기함으로써 세뇌가 깨지는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평작과 수작으로 갈리는 모양새다. 

 

여긴 번역도 문제가 있다. '오늘 밤, 마사가 죽는 일은 없을 거야'가 정확한 번역이다. '오늘 밤의 마사' 그러니까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그날 밤의 마사'와 다르게 '오늘 밤의 마사'는 죽지 않을 거란 배트맨의 심정을 담은 대사다.

 

4.
 배트맨 대 슈퍼맨과 저스티스 리그의 각본을 맡은 크리스 테리오는 이렇게 말했다.


 "3시간 짜리 영화가 나왔고, 난 만족했다. 의외로 잭 스나이더는 내 각본을 충실하게 연출해줬다. 그런데 여기서 30분을 잘라내니까 스토리가 이해가지 않더라."


 각본가 본인조차 극장에서 개봉한 버전은 반쪽 짜리 버전이며,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고 인정한 셈. 개인적으론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성공한 편인데, 이건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영상 내러티브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파악하는 것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일 뿐이다. 마이클 만이나 테렌스 멜릭,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아주 열심히 빈번하게 감상하면 '너두? 야 나두'가 가능해진다. 절대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익숙하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로이스 레인의 행동에 당위성이 없었던 극장판과 달리 감독판은........ 사실 당연하다. 슈퍼맨이 로이스 레인을 알아볼 거란 보증이 없는데 그 위험한 곳으로 로이스 레인을 데려간다? 그게 배트맨이 할 짓이냔 말이다.


5.

 한편, 크리스 테리오는 극장에서 개봉한 조스 웨던의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자신의 이름을 각본가에서 빼라고 요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극장판 저스티스 리그는 정말 여러모로 웃기는 작품이다. 완성품이랍시고 공개했는데 원안과 각본을 담당한 크리스 테리오가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할 생각까지 품었고, 촬영 감독인 파비안 와그너는 이건 내가 찍은 영화가 아니라며 극장에서 울어버렸다. 감독인 잭 스나이더는 (아마도) 지금 시점에도 극장판 저스티스 리그를 보지 않았다던가. 그는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을 만들면서 조스 웨던이 재촬영한 분량을 사용할 바엔 그걸 불태워버리겠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아마 조스 웨던이 재촬영 기간 내내 잭 스나이더를 디스해왔다는 사실을 듣고 화가 많이 났던 모양이다.


 웃기지 않나? 극장판 저스티스 리그의 감독, 각본, 촬영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중에 조스 웨던을 제외한 모두가 '저건 내 영화가 아니야'라고 말한다. 전대미문의 영화가 아닐는지. 스나이더컷이 안 나왔으면 큰일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