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훈련소 입소할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과거 논산 훈련소 입소대대는 연병장에 모인 뒤 차례대로 건물 뒤편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었다. 내 윗세대에선 건물 뒤로 이동해서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시점부터 바로 체벌을 가하곤 했다는데, 내 세대는 그런 것 없이 바로 생활관(막사) 앞에 모여서 설명을 들었다. 생활관의 전면에는 다음과 같은 현수막이 있었다.
"대한민국 국군은 욕설과 폭행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어도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걸 보고 '진짜로? 에이 설마'하고 생각했던 내 뒤로 조교가 소리쳤다.
"야이 X발, X새끼들이 X나 말 안 듣네. 대가리 박고 싶어? 시작부터 몸에 상처 좀 내줄까?"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현수막은 눈에 들어온지 1분도 안 돼서 문자 그대로 세금 낭비가 되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축구계에 만연한 인종차별 때문이다.
2020년 5월 26일. 미국에서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은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결정적 순간이었고, 전세계에 영항을 끼쳐서 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일으켰다. 이에 대해 인종차별로 인해서 말이 많았던 프리미어리그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유니폼에 선수의 이름 대신 Black Lives Matter를 새기기도 했다.
흑인의 생명만 소중하냐는 의견은 접어두자. 어차피 저런 것들은 앞서 말한 훈련소의 현수막처럼 겉치레에 불과하니까. Black Lives Matter를 그토록 강조하던 시절에도 프리미어리그에선 인종차별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고, 추모가 끝난 지금도 선수들의 유니폼 한구석엔 No Racism이라 적혀있지만, 알게 모르게 하는 인종차별과 관중석의 노골적인 인종 비아냥은 변함이 없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은 '미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