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 악녀, 과잉은 종종 문제가 된다

즈라더 2019. 1. 31. 20:00

 <악녀>는 과잉이 문제다. 가열차게 불타오르느라 그럴싸하게 엮여야 할 인과에 신경쓸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악녀>엔 액션이 장기인 감독이라는 걸 어필하려고 무리를 했다고 할 법한 롱테이크 액션이 가득 담겨 있다. 그냥 연출했어도 충분했을 액션을 핸드헬드 롱테이크로 찍으니 그게 멋진 건지 정신없는 건지 모르게 된다. 곡예가 가득한 액션을 롱테이크로 연결한 게 신기해서 액션이 잘 만들어졌다고 현혹될 수 있는데, <악녀>의 액션은 기본적 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만큼, 치고 꺾는 과정에서 느껴져야 마땅한 쾌감이 없고,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배우와 스턴트맨만 잔뜩 고생하는 '나쁜 액션'의 표본이다. <아저씨>와 <우는 남자>의 액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악녀>를 보고 새삼 깨달았다.


 액션에 역량을 집중하느라 다른 부분을 소홀히한 건지, 꽤 매력 있게 구성된 인간 관계가 재미없을 만큼 엮는 방법이 어설프다. 주인공인 숙희(김옥빈 분)는 대체로 감정이 과잉되어있고, 대다수의 다른 인물은 쿨병 말기 증세를 보인다. 여기에 유치한 대사까지 더해서 스토리텔링하니 오글거릴 수밖에. 설정에 여러 선배 영화가 뒤섞여있다는 말이 많이 나오던데, 뜻밖에 딱히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그 얽히고 섥힌 관계를 묘사하는 방법의 한심함일 뿐.



 <악녀>엔 시대상도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유형의 선배 영화인 <아저씨>가 화려한 반전을 모셔둔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인기를 끌었던 건 충실하게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악녀>엔 그런 게 없다. 배경만 한국일 뿐, 완벽하게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것 같은 묘한 영화. 판타지 영화조차 시대상을 적극 반영해서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세상에 이토록 완벽하게 격리된 이야기가 탄생할 줄은 몰랐다.


 <악녀>는 액션 과잉을 없애고 각본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2시간 20분 정도 되는 영화로 나왔어야 했다. 비극을 향해 가는 '통로' 정도로 취급되어 어설프게 처리한 멜로 부분을 특히 더 디테일하고 시간을 들여서 묘사해야 했다. 그래야 공감대가 서고 후반부 액션에 힘이 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슬프게도 <악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끔찍한 비극이 거듭됨에도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한심한 결과물이 되었다. 나이 들고 누선이 약해졌는지 시덥잖은 장면에서도 눈물을 쏟고 마는 내가 시큰둥하게 보고 있었으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되새길 수록 아깝단 생각이 든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들려주는 사람이 너무 어설퍼서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화자가 잘하지 않으면, 재미없게 느껴진다는 걸 깨닫게 하는 영화가 <악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