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극장판(감독판도 극장에서 상영했으니 틀린 명칭이지만,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놔둔다.)과 감독판은 아주 다른 경향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결론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화자의 시선 차이가 도드라진다. <세븐 데이즈>와 <용의자>란 현란한 스릴러를 만들었던 원신연 감독의 스타일을 극장판에선 볼 수 없었지만, 감독판에선 결말에 이르러 나타나는 걸 보니 확실히 '감독'판이 맞긴 한 모양. 10분을 추가하고 편집을 다시 하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영화가 크게 달라진다.
그렇다고 <살인자의 기억법> 감독판이 극장판보다 꼭 낫다는 얘긴 아니다. 비록 감독의 온전한 의도대로 만든 버전은 아니어도 극장판엔 감정에 호소하는 장면이 과장되지 않은 형태로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어서 감독판보다 몰입하기 쉽다. 마케팅 과정에서 중시한 김남길과 설경구의 대립 구도도 극장판 쪽이 훨씬 강력한 편이다. 악당만 죽여온 살인마와 그냥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대결이란 컨셉은 인간 말종과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대결이었던 <추격자>와 닮아있기도 한 덕에 익숙한 맛도 있을 것이다.
한편, 감독판은 극장판보다 억지스러움이 적다. 김병수(설경구 분) 역할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 덕분인데, 차근차근 김병수의 행보를 미스테리 스릴러의 형식으로 담아두어 장르 색채 또한 짙다. 언제나 헐리우드 영화의 스타일을 자기 입맞게 업그레이드해가며 쫓았던 원신연 감독의 성격이 드러났다고 할 수도 있는 게, 감독판의 흐름이 <메멘토>나 <파이트클럽>,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이다. 사실, <살인자의 기억법> 시놉시스를 들었을 때 원신연 감독이라면 분명히 언급한 헐리우드 영화처럼 만들겠구나 싶었고 그 예상은 극장판이 아닌 감독판에서 맞아떨어졌다.
모든 것은 은희(설현 분)를 위한 것이란 결론은 큰 범주에서 보자면 극장판이나 감독판이나 비슷할 수도 있다. 다만, 감독판은 극장판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민태주(김남길 분)가 김병수를 있는 대로 린치하는 꼴이라 몰입하기 쉽지 않은 데다 시종일관 이어지던 묵직한 분위기를 느닷없이 가볍게 만드는 결말이 굉장히 방정맞다. 그래서 감독판보다 극장판이 더 무게감 있게 잘 만들어진 영화라 여기는 사람도 아주 많을 것이다. 본래 영화란 단순한 짜임새가 아니라 분위기로 승부하는 장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