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20세기 소년 트릴로지에 대한 끄적임들

즈라더 2019. 1. 26. 18:28

<20세기 소년> 트릴로지를 봤다. 괴작으로 유명한 이 시리즈를 또 본 걸 보면 나도 보통 변태는 아니다.


_ <20세기 소년> 트릴로지는 일본 연예계, 심지어 일본 대중까지도 전력을 다해 도운 영화다. 원작 <20세기 소년>이 그 정도로 압도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한 명작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우라사와 나오키가 만화에 각종 추억을 혼신을 다해서 버무려낸 덕에 이를 공유하는 많은 사람을 자극했고, (강렬했던 버블의 기억마저 공유하는) 그 세대는 <20세기 소년>의 영화화에 엄청나게 열광했다. 그들의 기세가 워낙 거세서 다른 세대에까지 전염되었는데, 덕분에 <20세기 소년> 트릴로지는  엄청난 숫자의 인기 배우, 개그맨, 가수 등 유력 연예인들이 카메오로 참여한 프로젝트가 될 수 있었다.



_ 기왕 추억팔이하는 거라면 자기 나름의 추억팔이를 해보겠다는 생각. 제작진이나 영화사의 간부와 같이 제작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트릴로지가 이토록 괴작으로 나올 수 없었을 터. 아마 그 누군가에게 추억이란 16mm 필름의 열악한 현실에서 고통스럽게 B영화를 만들어 연명하던 과거의 자신이 아닐까 한다. 20세기 소년 트릴로지엔 80~90년대 일본 영화계의 B영화가 가졌던 온갖 괴이함과 황당함이 16mm 스타일의 후보정을 거쳐서 담겨 있다. 아마 연기하는 배우들도 설마 거대 자본과 일류 제작진이 투입된 시리즈에서 B영화 느낌의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을 터. 그래서인지 <20세기 소년> 트릴로지의 배우들은 어색하게 유도한 연기 지도가 필요 없을 만큼 충분히 어색해한다. 촬영 현장 메이킹만 봐도 얼이 빠져 있는 배우들의 모습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_ <20세기 소년> 트릴로지가 의도적으로 B영화스럽게 연출되었다는 증거는 여럿 있다. 그 중 '확증'이라 할 만한 건 역시 트릴로지 전반에 걸쳐 적용된 B영화 스타일을 완전히 포기한, 세련된 연출의 페스티벌 장면부터 친구랜드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3편의 엔딩이다. 워낙 세련되어서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에게 '누군가가 영화를 B스타일로 연출하라고 강요했다면 <20세기 소년> 6권을 들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연출의 결이 다르다.


_ B영화를 추억하고 싶어 안달이 난 연출 방식 덕분에 <20세기 소년> 트릴로지는 원작 <20세기 소년>과 완벽히 다른 성향을 지닌다.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쿨병이 극에 달했던 원작과 달리 몹시 감정적이고 황당하며 번잡하다. 아마 B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건 망작이나 괴작의 단계가 아니라 영화란 대중문화의 범주 안에 넣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대단하다. 일본 연예계가 한마음이 되어 밀어준 작품을 이런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다는 거, 보통 정신으론 불가능하지 않겠나.


6. 한국의 모 감독이 일본 만화를 원작삼아 대박을 터트리자, 거기에 당황한 일본 연예계가 전격적으로 밀어준 영화라는 소문도 있는데, 증거가 없으니까 가벼운 썰 정도로 기억해두자.


7. 타이라 아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