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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타: 배틀 엔젤, 영화였기에 끌어낼 수 있는 호응

즈라더 2019. 10. 11. 18:00

 영화는 마냥 스토리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읽으면 10분도 안 될 법한 스크립트를 가져다가 2시간 짜리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마당에 스토리가 제일 중요하다느니 하는 비판은 '종합 예술'인 영화에 있어서 가장 엉뚱한 지적이 된다. <알리타: 배틀 엔젤>이 뜻밖의 팬덤을 생성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리타: 배틀 엔젤>은 스크립트의 볼륨에 비해 플레잉타임이 엄청나게 짧은 영화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2시간 이하의 플레잉타임을 바라는 대중의 뒤통수를 대놓고 후려치는 양반이다. 그의 스크립트는 아무리 축약해도 2시간을 반드시 넘겨야 정상적인 전개가 가능하며, <알리타: 배틀 엔젤> 역시 그런 그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마지막 10분을 방대한 액션에 감정 묘사까지 더해서 30분 정도로 펼쳐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리타: 배틀 엔젤>의 감독은 제임스 카메론이 아니다. 그가 직접 연출했다면 스튜디오 측에서도 3시간까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허락했겠지만,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겐 그렇게 해줄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2시간으로 축약(!)된 <알리타: 배틀 엔젤>은 감정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고 유치하다. 이야기를 진득하게 연출해냈느냐만 따진다면 이 영화는 불합격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럼에도 <알리타: 배틀 엔젤>이 상당한 호응을 끌어낸 건 적어도 이 영화가 어떤 액션 컨셉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비주얼이 펼쳐져야 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왜 종합예술인지 정확하게 파악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센스가 적절하게 발휘된 것. [각주:1] 이 영화는 '고철 더미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기계 액션'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인간의 근육을 초월한 사이보그들의 속도감을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로 구현해냈을 뿐 아니라, 제임스 카메론 빙의라도 한 듯 동선의 합이 거의 완벽하다. 쇠와 쇠가 거칠게 부딪히는 소리의 살벌함 역시 확고하게 자기 역할을 하는 데다 정키XL의 강렬한 템포의 음악이 계속해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누가 로버트 로드리게즈 아니랄까봐 사이보그(에 인간 둘을 더해서)들을 싹둑싹둑 자르고 우지끈 박살 내는데 그 그로테스크한 매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알리타: 배틀 엔젤>은 영화가 왜 영화인지 알려주는 작품이다. 꼭 속편이 나오길 바란다.


 이하 스크린샷은 <알리타: 배틀 엔젤> 한국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다. 누르면 커진다. 화질은 디지털 촬영 블록버스터에서 기대할 수 있는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된 이상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그것. 



  1.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원래 뛰어난 감독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방치해뒀던 프로젝트 주웠다고 해서 적당히 연출하는 속 편한 양반이 아니다. 제작, 편집, 음악, 각본, 미술, 연출까지 모든 분야를 다 직접 해낼 수 있는, 헐리우드에서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