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프로듀스 재팬은 역대급 자폭 행위가 아닐까

즈라더 2019. 9. 7. 12:00

 처음엔 중국에서 리메이크한 프로듀스 시리즈처럼 일본에서 리메이크한 프로듀스인 줄 알았다. 그래서 <프로듀스101 재팬>(이하 <프로듀스 재팬>)이 시작된다는 이야기에 중국의 프로듀스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의 케이팝 팬덤의 파이를 빼앗아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여러 정보가 추가로 밝혀지고 나니까 이건 그런 정도가 아닌 듯하다.


 <프로듀스 재팬>은 현지의 리메이크가 아닌, CJ와 요시모토 흥업의 합작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매니지먼트까지 담당할 진 알 수 없지만, 기획사를 두고 합작을 벌이는 이상, 일본 활동에서 얻을 수익을 분배받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CJ는 <프로듀스 재팬>으로 탄생하는 그룹의 글로벌 활동까지 지원하게 될 예정이며, KCON과 MAMA에도 출연할 수 있다고 한다. 당연하다. 합작해서 만든 그룹이니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데까지 뽑아내야 할 테니까. 수저만 올려놨을 뿐, 일본의 기획사(AKS)도 방송에 참가하는 여러 회사 중 하나에 불과했던 <프로듀스48>과는 아예 다른 방식이다. <프로듀스48>이 방영되기 전 있었던 여러 지나친 우려가 <프로듀스 재팬>을 대상으로 한다면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일본의 케이팝 팬덤이 <프로듀스 재팬>으로 와르르 빠져나갈까 걱정하는 걸 넘어서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케이팝 팬덤이 빠져나갈 것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프로듀스101> 시리즈에 익숙한 한국인들도 이 방송에 몰입하고 <프로듀스 재팬>의 팬이 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의 데뷔조는 언제나 거대한 팬덤을 형성해왔는데, 이게 <프로듀스 재팬>까지 이어진다면 쿨재팬[각주:1]이 한국에서 성공하는 꼴이 된다. 이미 <프로듀스 재팬>의 프로필과 PR 영상을 본 한국인들이 '영업글'을 사방팔방에 퍼트리는 광경을 손쉽게 목격할 수 있다.


 가끔 '한류부터 신한류, 케이팝붐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선 이렇게 한국 가수, 드라마를 좋아해주는데, 한국은 일본의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며 이게 옳지 않음을 주장하는 일본인이 보인다. 그들에겐 <프로듀스 재팬>의 데뷔조가 한국에서 인기를 누린다면 꽤나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류의 태동기에 있었던 힘겨운 싸움을 몰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다. 보아나 동방신기, FT 아일랜드 등의 그룹은 일본 대기업의 지원은커녕 일본의 지하돌처럼 밑바닥부터 구르고 굴러서 인기를 누리는데 성공했고, 신한류는 일본의 기업이 억지로 끌고 올라온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팬덤을 바탕으로 성공했다.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데뷔하자마자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두자, 일본팬들조차 '우리가 이렇게 많았구나'라고 놀랐을 정도다. 한국은 그렇게 온갖 고생을 다 하거나 자연스럽게 생긴 인기를 바탕으로 일본에 진출했는데, 일본은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대기업에 얹혀서 한국에 진출하겠다는 게 얼마나 무례한 태도냔 말이다. 심지어 그 대기업이 자사의 인기 컨텐츠로 제이팝을 케이팝에 엮어서 한국에 홍보해주는 상황이라니 해외진출 한 번 참 손쉽게 한다.


 케이팝은 그렇게 뿌리깊지 않다. 케이팝이 일본에서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도 아직 10년이 채 넘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압박 때문에 무너질 뻔한 시기도 있었다. 유럽이나 북남미에서 케이팝이 인지도를 갖추기 시작한 건 그보다 훨씬 짧고 빈약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 30년 넘게 세계 진출을 꿈꾸던 일본에게 기회를 준다는 건 심각한 실수일 수 있다. 코 앞의 돈 때문에 앞으로 쭈욱 벌어들일 돈을 전부 날려먹는 자폭 행위란 의미다. 그리고 피해를 입는 건 CJ 하나가 아니라 케이팝 전체다.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화를 막기 위해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자한 쿨재팬을 한국 대기업인 CJ가 (의도치 않게) 크게 도와주는 꼴이다.




 CJ가 이 방송에 얼마나 깊게 관여하려는 건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한일 관계가 극단적으로 망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CJ가 <프로듀스 재팬>에 깊게 발을 담근다면, 이미지 타격이 상당할 터. 그래서 언급을 꺼리는 듯도하다. 


 지금 일본과 관계된 산업 하나하나가 타격을 입고 일본과 분리를 시도하는 마당에 자꾸 일본과 엮이려고 들면, 지금 한참 상승세인 아이즈원에게도 악영향일 수 있다. CJ가 떠안을 안 좋은 이미지가 일본인 멤버가 섞인 아이즈원에게 흘러가는 건 당연하다. 이쯤되면 내부에 일본 스파이가 있는 거 아닌가하는 망상도 해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케이팝을 그렇게 비유한다면, 아직 황금알을 낳지도 않은 경우다. 케이팝이 세계로 뻗어나간 결과물은 이제부터 나오기 시작할 테니까. 지금 케이팝의 흐름에 따라 드라마, 영화 등 다른 분야의 대중문화도 세계에 퍼지는 중이라 앞으로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CJ는 그 황금알을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만약, <프로듀스 재팬>이 음습하게 케이팝 파이를 빼앗는 계기가 된다면, CJ는 사실상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악의 축이라 해도 될 것이다.[각주:2] 


 상대가 일본이라는 걸 잊지 않으면 좋겠다. 저들은 멍청해서 손해를 본다면 모를까, 알고서 손해를 보는 일은 없다. 게다가 요시모토 흥업은 아주 악독한 방식을 써가며 100년 넘는 시간을 유지한 무서운 회사다. 이대로 간다면 CJ는 그저 일시적으로 돈을 번 뒤, 더 큰 것들을 일본에 내줘야 할 거라 확신한다.[각주:3] 그리고 그렇게 내준 것들로 말미암아 국가 이미지에 기여하던 한국 대중문화의 해외 인기가 타격을 입을 경우, CJ가 롯데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을 거라 확신한다. 




  1. 아베 신조가 추진한 정부 주도의 일본 대중문화 해외 진출 정책. 참고로 이 정책에 참여한 회사 중 <프로듀스101 재팬>의 요시모토 흥업도 있다. 즉, 이 프로젝트 자체가 쿨재팬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본문으로]
  2. 3대 기획사라면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겠지만, 안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케이팝 팬덤 안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 발악하는 중소 기획사에게 케이팝 팬덤의 파이가 줄어드는 현상은 끔찍한 악몽이다. [본문으로]
  3. <프로듀스101 재팬>을 합작하는 회사는 일본 최대의 연예기획사라 할 수 있을 요시모토 흥업이다. 또한, 방영되는 회사는 케이블이나 유료채널이 아닌 4대 민방 중 하나인 TBS다. 엄청나게 공을 들여서 런칭하는 셈인데, 여기에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음습한 속내가 따로 있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아베 신조의 쿨재팬 정책이 되었건, 요시모토 흥업이 되었건 간에 굉장히 독하고 위험한 존재들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