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걸그룹/아이즈원

아이즈원, 로켓펀치의 비키니 그라비아에 대한 이야기

즈라더 2019. 9. 7. 06:00

 아이즈원의 팬들 중에 함정 같은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하다. 아이즈원에 들어간 일본인 멤버 셋 중에 미야와키 사쿠라는 AKB48그룹 (이하,48그룹) 전체를 통틀어서 손꼽히는 인기 멤버였고, 야부키 나코는 하카타 쪽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라이징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프로듀스48>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한중일 AKB48 팬덤이 경악했던 것. 아무리 한국의 48그룹 팬덤이 작아도 함정이 하나도 없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 된다.


 일본 대중문화에 빠져 있는 사람들 가운데엔 '무조건 우리(?) 일본의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다. 48그룹 당시부터 아이즈원의 일본 멤버를 좋아했던 사람들에 그들이 섞여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그들은 대체로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른다.[각주:1] 한국에 살고 있으면서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른다는 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겠지만, 진짜로 그들은 한국의 사정을 하나도 모른다.



 얼마 전 타카하시 쥬리가 48그룹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재데뷔했다. 이제 그녀는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로켓펀치'란 걸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타카하시 쥬리 역시 아이즈원의 미야와키 사쿠라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한 인기 멤버였으며, <프로듀스48> 이전부터 그녀를 좋아하는 한국팬이 상당이 있는 편이었다. 당연히 앞서 말한 '한국 사정을 모르는 한국인'이 타카하시 쥬리의 팬들 중에 존재하고, 그들은 가끔씩 섬뜩한 이야기를 한다.


 '로켓펀치가 더 인기를 끌고자 한다면 타카하시 쥬리가 일본에서 활동할 때처럼 비키니 그라비아를 찍어야 한다.'


 전엔 그저 극히 일부, 나와 논쟁을 벌였던 한두 사람 정도의 생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즈원은 CJ라는 막강한 배경과 엄청난 규모의 팬덤 때문에 벗을 필요가 없겠지만, 로켓펀치는 중소 기획사인 울림 소속이므로 띄우기 위해 뭐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 중 하나는 내게 비키니 그라비아가 여성들의 '아코가레'라는 말까지 했다. 아코가레란 동경, 혹은 선망의 대상을 의미하는 일본어다.



 내게 '아코가레'라는 일본어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 푹 빠진 분이라 어느 나라의 여성이 비키니 그라비아를 동경한다는 건지 아리송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비키니 그라비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럽다'에 가까우니까.


 물론, 몇년 전 바바 후미카와 이즈미 리카로 시작된 '모그라(모델 + 그라비아란 의미로 모델이 그라비아를 찍는 경우)' 유행과 시라이시 마이 사진집의 초대박 행진 덕분에 그라비아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던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는 그저 일시적인 현상으로, 모그라 유행이 깔끔하게 끝난 뒤 비키니 그라비아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 역시 되돌아왔다. 그래서 여전히 일본 여성의 비키니 그라비아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다. 시라이시 마이와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사진집의 노출조차도 썩 좋게 보지 않는다. 시라이시 마이의 사진집이 여성들에게 대박을 터트린 이유가 단순히 벗어서가 아니라 그녀의 아주 아름다운 몸선이 드러났기 때문인 걸 괄시한 업계의 패착이다.


 그라비아의 이미지가 2000년대보다도 못 한 이유 중 하나는 몇몇 그라비아 아이돌과 배우, 가수들의 증언이 퍼져서다. 이젠 모델로 주로 활동하는 카케이 미와코는 거의 다 벗다시피 한 사진을 찍은 뒤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라고 말했고, 전 NMB48의 야마모토 사야카는 "현장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라고 말했다. 여러 그라비아 아이돌들이 "만화 잡지, 주간지에 실리는 그라비아는 본인이 직접 비키니를 고를 수 있지만, 선택하라고 주어지는 비키니들이 심각하게 야한 것뿐이었다."라고 증언했다. 배우로 활동하는 요시오카 리호는 "그라비아 촬영에 사용되는 비키니들은 착용자를 위한 게 아니라서 입을 때마다 매우 아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들이 이런 그라비아 업계를 좋게 볼 리가 없다.



 그라비아에 익숙한 일본이 이러한데 한국은 어떨까? 한국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그라비아가 올라오면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인다.


 "으......................................."


 단 한 글자 만으로도 느껴지는 끔찍한 반발심리에 감탄사가 나오지 않나? 쉽게 말해 지금 로켓펀치의 타카하시 쥬리나 아이즈원의 일본 멤버들이 비키니 그라비아를 찍는다면, 여성팬을 아예 버리고 가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로켓펀치와 아이즈원 안티들은 미야와키 사쿠라와 타카하시 쥬리가 일본 활동 시절 찍었던 비키니 그라비아 사진들을 잔뜩 모아서 여성 커뮤니티에 올리는 행위로 팬들을 미치게 하고 있다. 덕분에 여성 커뮤니티 중엔 미야와키 사쿠라와 타카하시 쥬리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곳이 상당히 많다.


 비키니 그라비아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건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이 깊은 나 같은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다. 한국 사람 대다수는 일본의 비키니 그라비아를 잘 모르고 있고, 아는 사람들도 업계의 상태를 잘 모른다. AV라면 모를까, 굳이 그라비아를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그라비아 업계는 거의 미쳐버린 상황인데, 이젠 '비키니' 그라비아가 아니라 '속옷' 그라비아라고 부르는 게 옳다. 심지어 그냥 속옷이 아니라 항문 쪽에 구멍이 뻥 뚫렸거나 시스루로 되어 있어서 엉덩이골이 그대로 보이는 속옷을 입고 찍는다. 지금 가장 핫한 그라비아 아이돌인 오구라 유카가 어떤 사진들을 찍고 있는지 찾아보시라. 많이 놀랄 거라 확신한다.



 즉, 아이즈원이나 로켓펀치의 누군가가 비키니 그라비아를 찍는다면 한국 활동 접겠다고 작정한 거나 다름이 없다. 


 그라비아 타령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아이즈원과 로켓펀치의 팬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한다. '얘넨 팬 아니에요'라고 선도 긋는다. 아이즈원은 노출이 전혀 없는 화보를 찍었음에도 비키니 그라비아가 많이 실리는 잡지에 게재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집중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 잡지 게재 소식이 들리고 잡지가 발간되기까지 약 10일 정도 기름에 붙은 불처럼 커뮤니티가 끊임없이 활활 타올랐다. 당시 굳이 그런 잡지에 화보를 넣어서 어그로를 끄는 이유가 뭐냐고 아키모토 야스시를 대차게 팼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대단한 '아코가레'다.



  1. <프로듀스48>에서 기껏 1~2년 연습하고 나온 한국의 새내기 연습생들이 48그룹의 현역 아이돌들을 실력에서 압도해버리니까 이럴 리 없다고 현실부정을 했을 지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