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 <한나> 나름 매혹적인 혼종

즈라더 2019. 8. 7. 18:00

 공백의 미학이라 통칭할 수 있을 독립영화의 작가주의성이 한참 유행하던 '첩보물'과 교배하면 <한나>가 탄생한다. 일종의 잔혹한 동화를 만드려 한 듯한 조 라이트 감독의 공백을 잘 살려낸 연출이 인상 깊지만, 모호함으로 도배된 이 성격이 가벼운 오락영화를 찾던 대중의 취향에 맞을 리 없다. 당연하다는 듯 혹평 세례. <한나>를 보기 전에 영화의 제작 지원과 배급을 담당한 게 포커스 피처스라는 사실을 확인했어야 한다. 포커스 피처스는 예술/독립 영화 전용 스튜디오다.


 감독은 <한나>가 여전사를 다룬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걸 꺼려한 모양인데, 의외로 <한나>는 그럴싸한 '여전사 비기닝' 정도는 해내고 있다. 즉, 오락성이 마냥 부족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 다만, 조 라이트 감독이 추구한 '잔혹 동화' 컨셉이든 그럴싸한 여전사건 간에 전부 다 시얼샤 로넌이란 배우의 이미지에 묻혀버렸다는 점이 문제다.



 지금도 온갖 영화제의 상을 쓸어담고 다니는 시얼샤 로넌이지만, 이 당시의 시얼샤 로넌은 평범한 영화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평론가로부터 '이 따위 영화에 소비될 배우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을 만큼 압도적인 배우였다. 그녀를 그렇게 대한 건 평론가뿐이 아닌 터라 종종 시얼샤 로넌에 심취해버린 감독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조 라이트 역시 그런 감독 중 하나다. <한나>는 시얼샤 로넌에 대한 헌정 영화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그녀에게 심취해있다.


 그렇게 조 라이트는 <한나>를 시얼샤 로넌에게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 자신을 그대로 반영한 영화로 만들었다. 매혹적이어야 할 여러 설정이나 어쩌면 어느 정도는 관심을 뒀어야 하는 액션도 완전히 관심 밖이다. 오락적인 장면의 비중이 암만 있어봐야 거기에 감독의 관심이 미치지 못 하면 관객에게 와닿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얼샤 로넌이란 배우에 얼마나 몰입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영화를 만드는 도중에 다른 쪽에 빠져서 올인하는 건 작가주의 감독들의 일상다반사다. 즉, <한나>가 특별, 혹은 신기한 경우에 해당하진 않는다. (이런 쪽의 1인자는 왕가위 감독.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초기 설정이나 목적 그대로 완성되는 일은 절대 없다.) 개인적으론 잔혹 동화란 설정 만큼은 완벽하게 살려서 마무리해주길 바랐지만, 그래도 <한나>가 <시얼샤 로넌>이 된 게 마냥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이런 감각의 영화는 의외로 수명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