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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을 <스티브 트레버>로 만든 이유

즈라더 2019. 8. 1. 00:00

 <원더우먼>을 볼 때마다 왜 인물 구조를 이렇게 만들어놨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스티브 트레버가 영화 전체를 완전하게 틀어쥐고 안 놔주기 때문이다. 


 스티브 트레버는 꼬마 다이애나 프린스에게 세상을 가르쳐주고, 달래고 설득한다. 인간의 삶이란 게 뭔지 짧은 시간 안에 다채롭게 직접 전달하며, 그 과정엔 과장조차도 없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시민이자,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며 히어로를 자처하는 바보 같은 의인.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던 1차 세계대전에 대해 자신을 비판하는 식으로 전달하는 - 자기 객관화까지 되어 있는 - 20세기 초의 시대상 그 자체다. 이런 입체적이고 우아한 캐릭터를 크리스 파인이 아주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즉, <원더우먼>은 원더우먼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티브 트레버의 이야기다. 이건 정말 무모한 모험이라 생각한다. 원더우먼을 보러 가서 스티브 트레브에게 몰입하고 돌아오는 꼴이니까. 


속편인 <원더우먼 1984> 스틸 사진인 듯


 그런데 오늘 재감상하면서 <원더우먼>을 <스티브 트레버>로 바꿔놓은 이유를 깨달았다. 갤 가돗은 작품의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는 연기력을 갖추지 못 한 배우라는 것다. 작품 내내 스티브 트레버를 메이킹하면서 '사랑해'라는 말 한 마디조차 서툴게 처리하는 일이 없던 크리스 파인과 달리, 크리스 파인의 스티브 트레버가 완전히 빌드업해놓은 메시지를 발연기 내레이션 하나로 와르르 무너트린 게 갤 가돗이다. 스티브 트레버를 영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스토리를 쓴 잭 스나이더인지 영화를 연출한 패티 젠킨스인지 모르겠지만, 배우가 지닌 한계를 잘 파악한 거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패티 젠킨스의 액션 연출 능력이 <원더우먼 1984>에선 좀 늘었어야 할 텐데. <원더우먼>의 메이킹 영상을 보면, 액션의 포인트를 잡지 못 하는 패티 젠킨스를 대신해, 액션 영화 경험이 있는 갤 가돗이 알아서 처리하는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연출에서 '경험 부족'은 만만히 볼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