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제이팝의 고인물화, 유키카와 시티팝

즈라더 2019. 7. 27. 12:00

 아이즈원의 일본 활동 노래들이 하나 같이 역대급 폐기물(일본팬들조차 차라리 한국 활동 노래를 번안해서 불러달라고 한다)인 건 제이팝이 문제라서가 아니라 아키모토 야스시가 고인물이라서 그렇다. 제이팝이 고인물이 아니란 얘기가 아니라 아무리 고인물이어도 그 따위 노래와 가사를 내놓진 않는다는 얘기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주장에 걸맞은 논거를 찾기 위해 2010년부터 일본에 진출한 한국 걸그룹이나 보이그룹의 음악들을 전부 살펴봤는데, 비평, 흥행 양측면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본 음악들은 한국 작곡가의 것이거나 유럽, 미국, 남미 작곡가들의 협작이었다. 일본의 작곡가를 데리고 만든 노래들은 지금 아키모토 야스시가 아이즈원에게 주는 노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게 2010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니 제이팝 전체가 심각하게 고여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사실, 이건 모닝구무스메의 프로듀서인 층쿠의 영향도 매우 크다. 아니, 어쩌면 시발점이었을 수도 있다.) 한국은 작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고 온갖 장르, 온갖 컨셉을 다 시도하며 발악하지만, 일본은 그게 아니다보니 고여버린 것이다.


일본 걸그룹, 퍼퓸. 그토록 인상 깊고 진취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그녀들도 벌써 8년째. 이런저런 음악을 다 해봤지만, 돌고 돌다 결국 고여버렸다. 일본의 웹에선 코첼라에서 블랙핑크가 퍼퓸 못지 않게 화제를 몰고 다닌 걸 두고 그래봤자 미국 팝의 카피에 불과한 음악이라며 비하를 거듭하지만, 그게 되려 퍼퓸을 비하하는 꼴이 되는 건 아나 모르겠다.


 버블 시기 시티팝이란 독보적 장르를 만드는 등, 차원이 다른 프로듀싱 능력으로 미국을 위협하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제이팝. 90년대 아시아 힙합 음악과 락음악 업계를 완전히 정복했었던 제이팝. 2000년대 에이벡스 여자 솔로 대란을 일으키며 아시아 전역을 진동케했던 제이팝. 그들이 고인물이 되는데까지 10년도 안 걸렸다. 일본인들은 아키모토 야스시가 제이팝의 수준을 떨어트린다고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 실력파라며 밀어주는 에그자일(EXILE)이나 이걸즈, 퍼퓸과 같은 그룹들도 똑같이 고인물의 퍼포먼스와 음악을 하고 있다. 그나마 퍼퓸은 제이팝 안에서도 독보적인 컨셉과 장르의 음악을 하는 그룹이라 꽤 긍정하며 바라봤었는데, 퍼퓸을 참신하게 하던 그 음악과 컨셉도 2호선 열차처럼 돌고 돌기를 몇번 반복한 끝에 벌써 8년이다. 


 일본 안에서 계속 시도하고 있음에도 명맥이 끊기기 직전이라 할 정도로 추락하던 시티팝 장르도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좋은 곡이 나왔다. 이게 시티팝이란 장르 자체의 인기로 넘어갈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이 보기 드문 사태(!)에 일본인들도 깜짝 놀라서 SNS가 들끓었다. 심지어 한국에서 시티팝을 부른 가수는 일본인인 유키카다. 일본에서 성우를 하다가 케이팝에 매료되어 한국으로 넘어온 유키카가 한국 작곡가, 프로듀서의 손을 통해 일본의 시티팝을 부른다라. 제이팝이 근래 (여전히 대단하지만 예전 만큼은) 힘을 못 쓰는 게 일본인의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고인물이라 프로듀싱 능력이 폭삭 썩어서 그렇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유키카가 한국에서 부른 두 곡의 시티팝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