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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사랑하는 이유

즈라더 2019. 7. 22. 00:00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하란 강요에 종종 당황한다. 설명할 수 없기도 하고, 설명할 게 너무 많아서기도 하다. 직접적인 대사보다 메타포와 영상으로 전개하는 특유의 스토리텔링 기법은 이 영화의 포지션을 모호하게 한다. 따라서 나 같은 사람까지 납득시킬 수 있는 접근법은 '스토리텔링에 실패했다'보다 '쓸데없이 허세 부린다'가 조금이나마 낫다고 본다.


 내가 이 영화에 꽂힌 순간들을 돌이켜봤는데, 정말 끝이 없이 나온다. 그 중의 극히 일부만 적어봤다.



 어린 브루스 웨인이 꿈에서 박쥐떼와 함께 떠오르며 "이 얼마나 멋진 거짓말인가"라고 말할 때 난 내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 환장할 거라 확신했다.


 클락 켄트는 누군가가 슈퍼맨의 동상을 훼손하고 "난 브루스 웨인의 직원이야!"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브루스 웨인의 존재를 처음 인식한다. 이후 자선회에서 비로소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을 연결한 때부터 배트맨에 대한 분노와 열등감이 표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걸 보며 부.. 무릎을 탁 쳤다.


 협박과 조작, 루머로 살살 긁는 렉스 루터의 세뇌에 가까운 전략도 마음에 들었고, 그러던 그가 스테판울프와 만나서 정신적으로 몰락하는 광경도 마음에 들었다.


 롱기누스의 창을 본 딴 크립토나이트 창이 신전의 물 아래로 가라앉는 상징은 또 어찌나 매혹적이던지.


 클락 켄트에게 옳고 그름을 왜 네가 판단하느냐고 말하는 신문사 국장 페리. 슈퍼맨이 이제 갓 사회에 들어온 애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케함으로써 슈퍼맨이 회색지대를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려든다는 걸 상징했다.


 천문학, 심리학, 정치학을 동원해 '우월한 존재인 줄 알았던 우리가 하찮은 존재였다'라며 배트맨의 심리를 대변한 것에선 기어이 부... 아니 양 무릎을 탁 쳤다. 그런 장면을 (심지어 제작비도 겁나 들어간 장면이다) 통째로 메타포로 써먹는 건 보통 패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일반적인 오락 영화였다면 그저 대사로 적당하게 드러내면 그만인 장면이다. 영화는 내내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을 거듭하는데, 덕분에 이 영화에 폭망 평가를 내린 평론가들 중에서도 적어도 '패기' 만큼은 인정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었다.


 '히어로'가 되어도 모든 걸 막을 순 없다고 에둘러 말한 조나단 켄트와 클락 켄트 대면씬의 모든 대사가 마음에 들었다.


 세상 모든 남자의 특별한 여자는 '엄마'지. 라는 렉스 루터의 대사를 비롯해 각종 방식으로 꾸준히 던져온 복선들도 마음에 들었고, 브루스 웨인의 세뇌가 풀리는 듯한 연출 모먼트도 마음에 들었다. 다소 급하게 처리해서 아쉬웠지만.



 사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액션 만으로도 뽕을 뽑는 영화다. <맨 오브 스틸>의 클라이막스를 배트맨 시선으로 쫓아가는 오프닝은 <맨 오브 스틸>과 교차 편집 영상이 돌아다닐 정도로 임팩트가 있었다. 원더우먼의 첫 등장 장면이야 말할 것도 없는 명장면인 데다 지옥도를 방불케하는 슈퍼맨과 (둠스데이일 가능성이 큰)괴물의 히트비전 대결 장면을 비롯해 비주얼 측면에서 인상 깊은 장면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 영화는 배트맨의 살벌한 무력을 제대로 보여준 첫 번째 배트맨 영화다. 24:1로 렉스 루터의 부하들을 박살내는 장면은 보고 또 봐도 놀랍다.


 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사랑한다. 그렇게 많이 봤음에도 감독판의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지루한 적이 없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