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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 넓어지지 않고 깊어지는

즈라더 2019. 7. 7. 06:00

 거대한 시간의 강을 넘어온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대해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건 이전보다 넓게 펼쳐지는 사유의 스펙트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기대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개념에 적절히 들어맞으며, 나 역시 어쩌면 불호에 약간 치우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다섯 번째 보고 나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메시지에 상당히 깊은 맛이 있음을 깨닫는 중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사유는 <블레이드 러너>로부터 한 발자국도 걸어나가지 않았다. 대신 아주 깊게 땅을 파고 있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집요하다. 고민을 유도하는 데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결론마저도 다시 재고하게 하는 지독함까지 갖췄다. 'AI에게 영혼이 없는가'로 시작해서 '그렇다면 인간은 영혼을 가졌는가'로 순순히 연결하더니 '영혼이 없는 누군가는 진짜가 아닌 건가'로 되묻고 그렇다면 '진짜란 무엇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친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에 대한 결론을 '존재'라고 설명한다. 존재하는데 어떻게 가짜일 수 있는가라는 단순한 결론이지만, 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존재가 소통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게 상징적이다. 데커드는 조에게 조롱하듯 '진짜인지 가짜인지 한 번 물어보든가'라고 말한다. 존재하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을 한다는 게 얼마나 엉뚱하고 의미없는 일이냔 말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재차 집요하게 질문해댄다. 홀로그램으로 밖에 성립할 수 없는 인공지능 '조이'에겐 영혼이 있는가? 전화나 메시지가 연결되는 순간 자동으로 멈춤 상태가 되는 피동적 존재지만, 분명히 직접 생각하고 행동하며 변화하는 인격체임에 틀림 없는 장면들이 수두룩하다. 그러한 순간을 보며 이제 결론을 낼 수 있을 듯하다 싶은 그 순간에 영화는 감상자가 잠시 망각하고 있을 사실을 끄집어낸다.


 '조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인류 전반에 퍼진 '상품'인 조이가 '영혼'이 깃든 인격체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조이는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탄생하는 리플리컨트와 궤를 같이하는 존재다. 그저 육체를 가지지 못 했을 뿐. 머리론 이해해도 마음이 거부감을 느끼고 마는 이 영화 속 현실에 리플리컨트들은 조이를 격하하고 무시함으로써 사실을 부정하고자 한다. 본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답길 바란다며 혁명을 준비하고 있으면서 결국, '노예 리플리컨트'보다도 못 한 계급을 생성해버렸다. 이는 그 자체로 리플리컨트들이 인간임을 증명한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리플리컨트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두고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벽을 허물 수 있다며 존재하지 않는 것 취급하는 '인간'을 묘사했다. 즉, 조이에 대해 방식이 벽을 만들고 인정하지 않으려드는 리플리컨트의 스탠스는 인간과 아주 닮았다. 그들은 아주 부정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이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었던 셈이다.


 조는 언제나 혼자였고, 혐오의 대상이었다. 재능이 넘쳐나는 형사임과 동시에 '껍데기'라며 인간들에게 조롱받는 리플리컨트. 조가 사랑하는 조이는 리플리컨트에게도 조롱받는 인공지능 홀로그램. 그간 리플리컨트라는 이유로 그저 수긍하며 살았던 조는 거대한 조이의 홀로그램 앞에서 비로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조의 마지막 선택은 비합리와 합리의 어느 중간 즈음에 머물러있다. 일견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 다운 존재'가 되겠다던 리플리컨트의 말에 딱 맞는 행동을 했으므로 합리적인 자기 증명이기도 하다. 혁명을 꿈꾸며 합리적인 행동을 요구하던 리플리컨트 집단에겐 기가 막힌 아이러니다.


 이렇게 지구 내핵까지 파고들 만큼 집요한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사유는 드니 빌뇌브의 점진적 연출의 힘을 빌어 우아하게 발현된다. 역시 드니 빌뇌브는 <컨택트>처럼 엉뚱하게 자기 재능을 낭비하는 영화보단 <프리즈너스>나 <블레이드 러너 2049>, <시카리오>와 같은 영화가 더 어울린다. <시카리오>가 테일러 쉐리던의 각본에 지나치게 기댄 경향이 있다는 걸 고려하면, <프리즈너스>와 <블레이드 러너 2049>야말로 드니 빌뇌브의 미학이 가득 담긴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하 스크린샷은 <블레이드 러너 2049> 한국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다. 누르면 커진다. 화질은 기대했던 수준에 부합하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