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봤을 법한 소재, 어디선가 봤을 법한 골격의 이야기도 가지고 노는 작업자의 그릇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가 그런 경우로, 원작 소설을 대단히 괴상한 방식으로 다듬어 담아놓았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영화로 만들기엔 원작의 볼륨이 지나치게 작다. 장편영화에 걸맞은 볼륨으로 이야기를 키우는 과정에 감독의 각색이 상당히 들어갔는데, 그렇게 커진 이야기를 영상적 내러티브로 전달하는 그야말로 제 정신이 아닌 선택을 했다. 그렇게 이 영화는 마이클 만 감독의 작품마냥 감상자를 들쳐업고 영화 속 세상에 던져넣는다.
흥미로운 건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스토리텔링에 불친절한 방식의 친절함을 끼워넣었다는 사실이다. 대사가 아닌 영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마당에 주인공의 과거와 심리 상태를 플래쉬백과 컷백으로 구성된 환각(혹은 상상)으로 묘사하는 금기를 저지른다. 영상적 내러티브의 대부라 할 수 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래로 영상이 다른 곳으로 새는 기법은 테렌스 멜릭처럼 유려하게 치장해도 다수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린 램지 감독은 도무지 어울릴 수 없을 듯한 두 방식이 충돌하지 않게 플래쉬백조차 대사를 최대한 배제하는 과감한 선택을 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둔다. 그래서 불친절한 친절함이다.
액션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영화임에도 액션을 통째로 무시해버리는 연출 방식은 <드라이브>나 <퍼스널 쇼퍼>처럼 영화의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갖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적 회피로 보이며, 그 다른 부분이란 학대, 납치, 유괴, 성폭행, 페도필리아 등의 싸늘한 단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이런 억지스럽다 싶을 만큼 집요한 주입식 교육은 사람에 따라 놀라울 정도로 '서글프고 우아한 이미지'일 수도 있고, 그저 따분하고 재미없는 '꼰대의 예술성'일 수도 있다.
다만,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따분하게 느낀 사람도 연출 방식이 '생각'을 유도한다는 주장엔 동의할 것이다. 이 영화엔 두 사람의 킬러가 나란히 누워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소녀가 피 묻은 손으로 식사하는 장면 등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가득해서, 이를 해석해보려는 두뇌의 의지를 꺾기가 쉽지 않을 터. 그게 내가 영화란 장르가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하 스크린샷은 <너는 여기에 없었다> 한국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 말끔한 낮 장면과 고감도 노이즈가 가득한 밤 장면 등이 혼재되어 있는데, 전형적인 디지털로 촬영한 저예산 영화의 영상이다. 밴딩 현상을 완전히 잡아내지 못 한 듯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