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케이리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몰루이지 2019. 6. 23. 00:00

 수년 전, 케이리그의 화두는 '패스 축구'였다. 한참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이 티키타카로 세계를 재패하던 시절이라 케이리그 역시 영향을 받은 것. 리그 출범부터 분데스리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 하던 케이리그가 패스 축구를 시도하자, 브라질과 스페인 축구의 영향으로 탄생했던 제이리그보다도 더 뛰어난 기술을 보여줘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시점의 케이리그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여러 차례 진출하며 아시아 최고의 리그로 군림한다. 특히 전북 현대와 같은 팀이 패스 축구로 유명한 제이리그의 팀들을 패스 축구로 박살 내버리는 경기가 여럿 연출되면서 팬들을 열광케했다. 당시 전북 현대의 별명은 '전북셀로나'. 때맞춰 포항 스틸러스는 티키타카를 포항 스타일로 소화한다며 '스틸타카'라는 별명을 쟁취(?)했다. 당시 패스 축구의 힘을 받아 노망주의 시작을 알린 스트라이커가 바로 이동국이다.



 이렇게 놀라운 실력으로 아시아를 재패하던 케이리그는 정작 한국 국가대표팀에선 외면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케이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보였던 선수가 아니라 '홍명보 본인에게 익숙한 선수'를 주로 뽑았고, 제이리그나 카타르, 중국 리그의 선수가 상당수 발탁됐다. 홍명보는 지속적으로 케이리그를 멸시하는 발언을 했는데, 유럽 리그라면 모를까 아시아 리그들은 대부분 케이리그보다 한 수 아래란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기에 케이리그를 충분히 보지 않고 선수를 선발한 것 아니냔 의혹을 샀다.


 당시 홍명보의 열혈한 지지자들 중 일부는 그런 홍명보의 주장을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현대 축구의 흐름은 개개인의 테크닉에 의한 볼 소유와 창조적인 패스를 통한 패스 축구다. 케이리그는 그걸 할 수 없으니 당연히 제외되어야 한다."


 케이리그의 변화를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2014년 월드컵 이후, 케이리그는 그 변화를 인지하지 못 한 대중의 멸시와 고인물 서포터즈의 막장 행태, 절대적 강자였던 전북 현대의 심판 매수, 불거지기 시작한 시민 구단의 단점, 타이밍 딱 맞춰서 몰락하던 티키타카 등 여내외부에서 난항을 겪다가 최근 들어 간신히 예전의 폼을 되찾는 모양새다. 그러나 아무리 나아져도 우리나라에서 K리그가 특별한 인기를 누리진 못 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