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멜론 차트 장악한 기계픽 음원 사재기와 구분법

즈라더 2019. 5. 16. 00:00

 한국의 음악 시장이 음원 중심(정확히는 멜론 중심)으로 완전히 개편하면서 사재기의 형식도 바뀌었다. 음반을 구매해서 판매량을 뻥튀기하는 게 아니라 기계를 이용해 음원 스트리밍 순위를 올리는 쪽으로. 이른바 말하는 '기계픽'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도출된 문제점은 속 편하게 볼 수준이 아닌듯하다. 음반보다 음원의 사재기가 (브로커가 홍보하고 다닐 만큼) 훨씬 쉽고 싸다. 즉, 예전 같으면 자본이 없는 회사들은 꿈도 못 꿨을 사재기를 소형 기획사들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멜론 차트를 비롯한 여러 음원차트에 기계픽이 너무 많다.


 황당한 건 해당 가수와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아이돌 팬덤의 스트리밍보단 낫다'


 한심한 사고 방식에 할 말을 잃게 한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을 아득히 떠나보낸 채, 공급이 수요까지 담당하는 자웅동체를 음원차트에 실현해놓고 팬덤 스트리밍보다 낫다고? 그래, 낫겠지. 팬덤보다 훨씬 화력이 쎄니까. 팬덤 스트리밍이라고 해봐야 한정된 숫자의 사람이 돌리는 건데 어떻게 기계를 이길 수 있겠는가. 지금 기계픽은 팬덤의 스트리밍을 가볍게 이긴다.


아이유도 못 해내는 걸 그들은 해내더군요


 기계의 열혈한 지지를 얻은 사재기 가수가 누군지 알고 싶다면, 멜론 실시간 차트를 확인해보면 된다. 일반인이 음악을 제일 많이 듣는 시간대가 언제인지 확인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혹은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인 7시부터 9시까지가 첫 번째 턴이고, (비중이 크진 않지만) 점심시간인 12시부터 14시까지가 두 번째 턴이다. 가장 화력이 가장 강한 건 퇴근 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인 19시부터 23시 사이. 그래서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노래는 주로 이 시간대에 힘을 발휘한다. 한편, 23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는 팬덤의 스밍 덕분에 팬덤 규모가 큰 보이그룹의 시간이나 다름없고, 아침에 일어나서 멜론 차트를 확인해보면 보이그룹 음원 순위가 폭등해있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놀랍게도 기계픽들은 그런 새벽에도 순위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보이그룹을 누르고 올라가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방송 등을 통해 화제가 된 것도 아닌 무명 가수가 일반적으로 음악을 듣기 어려운 시간대에 오히려 역주행하는 양상을 보인다면, 100% 기계픽 사재기라고 보면 된다. 특히 새벽은 보이 그룹 팬덤의 화력 체크 시간이라서 팬덤이 작은 가수는 순위를 올리는 게 불가능하다. 기계픽은 그 어렵다는 걸 해내는 정도를 넘어 대중적 지지까지 완벽한 방탄소년단 같은 거물조차 이긴다. 이 광경을 목격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아티스트의 힘이 댄스 가수나 아이돌을 이길 수 있다는 증거'


 그 무시하는 아이돌의 습작 수준, 음반에 담지도 못 할 자작곡 수준을 가져다가 아티스트 운운하는 것도 웃기고, 이미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구분하는 단계를 진작에 지난 마당에 철지난 소리하는 것도 웃긴다. 장르로 아티스트 여부를 따지는 기형적 사고 방식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태연이 못 하는 걸 해내더라고요 걔네들


 근래 기계픽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빌드업이 치밀해졌다. 약 2개월 정도를 내다보고 100위 밖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그룹이 멜론 차트에서 더 높은 순위를 내도록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그룹 가수 팬덤이 이걸 눈치채지 못 할 리가 있는가. 요새 기계들은 올라갔다 내려갔다해서 순위 그래프에 굴곡을 만들도록 설계(!)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해봤자 음원 차트에 빠삭한 팬덤들은 다 눈치 챈다. 


 멜론은 얼마 전에 음원을 이용한 사람수를 통째로 제공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돈줄이나 다름없는 실시간 차트를 포기할 순 없으니 '이거라도 봐라'라는 일종의 회피책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데, 그 의중이 어떻든 간에 우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음원 차트를 이용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팬과 대중을 다 잡은 거물들은 음원 발매 초기에 100만 가까운 수치에서 논다. 아이즈원 같이 중위권에 알박는 그룹은 발매 초기에 20만에서 30만 사이를 유지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방탄소년단처럼 유료 팬클럽 회원만 10만을 훌쩍 넘기는 그룹이 아닌 이상 팬덤의 힘만으로 (실시간이 아닌) 일간 차트를 장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드러났다. 그러나 기계픽은 그 불가능한 걸 해낸다. 실시간 차트에서 대중이 음악을 듣지 않는 시간대에 방탄소년단을 눌러버리더니 일간 차트 순위까지 실시간 못지 않게 쭉쭉 올리고 있다. 이렇게 절대 있을 수 없는 추이를 보여놓고선 SNS에서 화제가 되어서 그런 거라고 주장 하는 걸 보며 참 세상 편하게 산단 생각 밖에 안 들더라. 변명이라도 그럴싸하게 준비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소녀시대와 아이유는 언제쯤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팬들 피를 막 말리네..?


 예전엔 기껏해봐야 한 달에 하나 둘 정도였던 기계픽이 이젠 너무 많다. 100위 밖에서 살금살금 기어오르며 빌드업하는 거로 보이는 가수도 엄청나게 발견되었다. 이 숫자면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음반 사재기보다 더 적은 돈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부의 음원 사재기에 대한 미지근한 반응 때문인지 '안 하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소형 기획사들 사이에 퍼진 모양이다. 조치가 필요하다.



뱀다리) 언젠가부터 '사재기'란 단어의 용도가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아는 사재기는 지금 '플미충'이라 불리는 것들이 하는 짓을 의미하는 거였는데..


뱀다리2) 이래서 실시간 차트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할까 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기계픽을 구분해내는 게 실시간 차트의 추이였다. 퇴로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