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드>로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실랏 영화 열풍은 <레이드2>에 이르러 홍콩 느와르, 갱스터 무비 성향을 띠기 시작하더니 <밤이 온다>에선 아예 대놓고 홍콩 느와르를 카피한다. 그것도 어설프게. 그런데 이게 또 나름 나쁘지 않은 맛이 있다.
<밤이 온다>는 80년대와 90년대에 나왔으면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분위기의 마이너 아류작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당시의 홍콩 느와르를 쫓았다. 총 외에 주무기로 칼, 주먹 등이 추가된 것에 불과하고, 실랏으로 살짝 양념을 쳤을 뿐, 설정부터 전개 구조까지 아주 많이 닮았다. 그런데 이게 조만간 2020년대를 맞이하는 지금 통하느냐다.
이런 유형의 역할이 하나씩 있는 것마저도 추억 강제 소환. 줄리 에스텔은 <레이드2>의 망치들고 살육하던 그 처자. 속편에 줄리 에스텔이 나온다면 감상할 생각이 있다.
<밤이 온다>는 지나친 옛감성이 독으로 작용한 경우다. 많은 걸 생략해도 알아서(?) 보정해주던 30년 전과 달리, 공들이지 않은 플래시백으로 내러티브를 보강하는 방식은 지금 관객의 허용 범위 안에 없다. 지금 중국의 주류 영화들이 시대에 뒤처졌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런 스타일의 연출을 못 잃고 억지로 이어가서인데, 그걸 <밤이 온다>가 똑같이 하고 있다. 전반 1시간 동안 쌓아 올린 독한 전개는 후반 1시간 동안 1000배의 물을 쏟아부은 듯한 생략의 어설픔으로 전부 희석된다. 같은 감독의 연출이 맞는지 궁금할 정도로 전후반의 차이가 극심하다.
다만, 이 영화의 치열함은 완성도와 별개로 가벼이 볼 수 없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잔혹한 묘사와 날 것 느낌이 만연하는 무술 안무로 꾸며낸 아파트 액션씬은 <황해>와 닮았다 싶을 만큼 치열하며, 끈기 있는 촬영의 힘까지 빌려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등극한다. 이 범상치 않은 치열함은 최근 인도네시아 범죄물의 공통 분모고, <밤이 온다>가 즐거운 영화인 이유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대중이 이 정도 수위의 영화를 문제 없이 소비하고 있다면, 인도네시아 영화는 앞으로 더욱 발전할 거라 본다.
전반부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가 후반부를 보고 기운이 빠지긴 했는데, 그래도 실랏이 첨가된 인도네시아의 느와르엔 나름 독특한 맛이 있다. 앞으로도 인도네시아의 범죄물이 자주 소개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