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웨스트월드2, 거짓과 진실 중간의 교만한 선택

즈라더 2019. 3. 11. 12:00

 <웨스트월드2>는 불완전, 필멸, 인과가 선행된 선택 등 이제 영화 업계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인문학적 요소를 신선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극과 합체한 드라마다. <매트릭스> 시리즈나 <이노센스>처럼 철학을 줄창 읊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야기의 전개를 통째로 인문학에 맡겼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여러 터닝 포인트 전부가 인간과 로봇의 고뇌로 이루어져있으며, 그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명백하게 철학적이다. 다소 극단적이라 할 만큼 정체성이 불분명한 로봇을 제작 시점부터 다룬 작품이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시즌1에서 호스트들을 학살하며 공원의 신으로 군림하던 윌리엄은 돌로레스의 반란 이후, 호스트에게서 불멸성, 무한함이 사라지고 '필멸의 가치'가 생겨나자 그들로부터 '인간'을 느낀다. 본인의 정체성이 공원에 있다고 생각하던 그가 처음으로 공원에서 '꾸며진 거짓으로 여겼던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인 뒤, 해서는 안 되는 의심과 선택까지 저지르고 절망한다. 이 순간 하나하나가 전부 드라마의 터닝 포인트로 작용하며, <웨스트월드2>는 이런 식으로 아예 전개 자체를 통째로 철학에 맡기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읽기'는 어렵지 않다. 이야기 흐름 자체를 파악하지 못 할 일은 웬만해선 없다. 단순히 이야기만 보면 그리 난해하지 않고, 길지도 않기 때문이다. 박지훈 그것과 좋은 겨루기가 될 법한 블루레이의 자막조차 흐름을 이해하는 걸 방해하진 못 한다. 문제는 사유의 즐거움이다. <웨스트월드2>를 보고 진짜 즐거움을 느끼려면 흐름만 읽는 게 아니라 철학에 기대고 있는 내러티브를 완전히 파악해야 하는데, 이게 정말 쉽지가 않다. 담고 있는 철학의 깊이가 대단해서라기보다, 타임라인을 교차해서 구성한 플롯이 내러티브에 집중하지 못 하도록 방해 혹은 배반하기 때문.


 한편, <웨스트월드2>는 오락적 요소를 대폭 강화했다. 총격씬의 비중이나 규모가 아주 커졌을 뿐 아니라 라자 월드, 쇼군 월드로 야수와의 대결부터 찬바라 액션까지 연출해놨다. 특히 쇼군 월드는 ('자유 의지'와 '선택'이란 주제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건 알겠지만서도) 그 정도로 분량이 필요했는지 의문일 만큼 대부분이 오락성에 치중되어 있다. 즉, 시각, 청각적 쾌감 만큼은 확실하게 업그레이드된 시즌이다.


뱀다리) 개인적으로 에반 레이첼 우드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 몰랐다. 에반 레이첼 우드 나홀로 시즌1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대로 감정이 이어진다. 시즌1과 시즌2를 한꺼번에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놀라운 집중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