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B 더 비기닝, 시작이니까 봐준다

즈라더 2019. 3. 9. 06:00

 이능력자를 다룬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B: 더 비기닝>. 누구 말마따나 뒤늦게 갈라파고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일본 대중문화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제 무한에 가까운 자가복제뿐인 걸까? 설마. 그냥 이쪽 장르의 애니메이션이 그런 것뿐이다.


 <B: 더 비기닝>은 빌드업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후방부터 전방까지 차근차근 밀고 당겨가면서 공간을 만들고 송곳처럼 골문을 찌르는 빌드업이 반드시 필요한 애니메이션임에도 12화에 불과한 길이 탓인지 그러질 못 했다. 평행 세계를 바탕으로 그려지는 SF인 데다 빈번한 장르 전환을 주무기로 삼았음에도 빌드업이 부족하니 클라이막스의 감정에 몰입이 잘 안 될 수밖에 없다. 결국, <B: 더 비기닝>은 11화부터 12화에 걸쳐서 장대한 설명문을 읊고 나서 다음 시즌을 예고한 뒤 끝나버린다.



 프로덕션 IG의 애니메이팅도 작품성에 그다지 도움을 못 줬다. 다작화된 회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듯 이전의 힘이 사라졌고, 특기였던 현란한 액션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보인다. 소수의 등장인물끼리 전부 다 해먹는다는 반전 역시 다작의 부작용을 느끼게 하고, 음모론의 현실화에 집중한 배경 스토리 탓에 디테일이 대거 생략되었다는 사실이 이능력자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그저 소리만 박박 지르고 '구해내겠어'를 반복하는 <B: 더 비기닝>의 어느 역할은 분명히 똑같은 걸 전에 봤었다. 한 20년 전부터 대략 수십 번 정도?


 넷플릭스와 함께한 첫 작품임을 감안하고 다음 시즌을 기대해본다. 열심히 보긴 했는데, 비판할 것만 떠올라서 뒷맛이 꽤나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