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이번 포스팅의 제목은 '재점화되는 K 콘텐츠의 위기'가 될 예정이었다. 영화 쪽이야 원래부터 약세였으니까 새삼 말할 것까진 없고, 드라마 쪽에서 한국 드라마의 자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플릭스패트롤을 기준으로 하면 틀리지 않은 이야기였으니까 글의 원안을 미리 작성해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뜬금없이 <닥터 차정숙>이 이름을 올렸다.
<닥터 차정숙>이 오늘 업데이트된 넷플릭스 주간 순위의 비영어권 TV 차트에 이름을 올린 건 매우 상징적이다. 알고리즘을 통한 추천을 제외하면 딱히 적극적인 프로모션이 가동된 작품이 아님에도 순위에 들었다. 이는 넷플릭스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 드라마를 꾸준히 보는 사람의 숫자가 절대 적지 않다는 증거로 손색이 없다. 심지어 중년의 여성, 그것도 엄청 예쁘거나 스타일리시하지 않은 여성(엄정화와 별개로 작품 속 차정숙이 그런 인물이다.)의 다소 판타지가 섞인 이야기임에도 몰입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중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선 <길복순>, <퀸메이커>에 이어서 세 번째로, 여기에서도 어떠한 메시지를 캐치할 수 있다.
플릭스패트롤을 열어서 <닥터 차정숙>을 감상하고 있는 나라가 어딘지 살펴보니 예상 그대로 아시아권 중심이다. 그러나 <닥터 차정숙>의 성적을 고려할 때 10위 안에 들지 못했을 뿐, 상당히 많은 나라에서 꾸준히 감상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간 순위는 4월 30일까지의 집계이며, 집계일의 대부분이 4화까지만 업로드된 상태였다. 겨우 4~5화의 성적으로만 주간 순위 10위 안에 들어간 셈이다.
며칠 전에 넷플릭스에서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이미 투자를 하고 있던 것의 연장선에 불과하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 넷플릭스 주간 순위를 보니까 '할 만하구나'란 생각을 하게 된다. 확실히 궤도에 올라 선 K 콘텐츠, 아니 K 드라마다. <닥터 차정숙>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영어권 영화 부문에선 <가이드 투 러브>가 1위를 차지했다.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난 여행사 임원이 베트남의 투어리스트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는 이야기라는 모양. 평가를 보아하니 무난한 이야기에 교훈 한 스푼, 영상미 두 스푼 정도인 듯하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비영어권 영화 부문에선 <에이전트 AKA>가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의 액션 영화. 생각해 보니 프랑스도 오랜 세월 영화로 쌓아온 명성에 비해 넷플릭스에서 활약이 미미한 편에 속한다. 오히려 독일이나 노르웨이 쪽이 넷플릭스에선 훨씬 나은 작품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도 참 흥미롭다. 한국처럼 제작되는 작품 자체가 적은 것도 아닐 텐데.
넷플릭스 주간 순위 영어권 TV 부문의 1위는 <외교관>. 상당한 호평과 함께 이미 시즌 2를 확정 지었다. 개인적으론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란 생각을 했었지만, 넷플릭스 입장에선 제작비 대비 성적이 좋다는 판단이 있었던 모양이다.
반면, <섀도우 앤 본> 시즌 2는 역시 제작비 대비 좋은 성적이 아닌 모양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때문에 이런 성적이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실제 <섀도우 앤 본> 시즌 1이 5500만 계정이 시청했을 정도로 대박을 터트린 건 러시아와 동유럽 쪽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되면 자칫 시즌 3 제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재미있게 본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히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끝나는 건 곤란한데 말이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비영어권 TV 차트에선 <예감> 시즌 2가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주간 순위에 들어간 한국 드라마는 6위의 <퀸메이커>, 8위의 <닥터 차정숙>, 9위의 <더 글로리>다. <더 글로리>는 이제 슬슬 10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K 콘텐츠의 다음 타자는 <택배기사>. 그런데 지금 나온 예고편의 퀄리티가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벌써부터 사람들 사이에 걱정이 오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넷플릭스 K 콘텐츠는 예고편 퀄리티가 작품성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욱더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부디 우려를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는 좋은 작품으로 탄생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