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비완 케노비 (2022) 디즈니 플러스 4K HDR 리뷰

즈라더 2022. 11. 25. 14:50

오비완 케노비 포스터

 

 대다수가 <오비완 케노비>에 대해 기대했던 건 아마도 '은둔 고수'였을 것이다. 클론 전쟁의 영웅이자 위대한 제다이 마스터. 전성기를 달리던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다스 베이더로 만들어버린 그 실력의 제다이가 은둔해있다가 사소한 사건을 시작으로 점점 큰 사건에 빠져들어간다는 이야기. 마치 무협의 서사처럼 통쾌함을 안겨줄 이야기. 그러나 <오비완 케노비>는 그런 기대를 완전히 배반한다.


 10년 동안 포스를 봉인하다시피 한 상태로 주먹질 하나도 힘겨워하는 노인네. <오비완 케노비>의 시작점에서 오비완은 무술 경험이 있는 일반인에 가깝도록 그려진다. 제다이로서 책임감도 없고 수련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후회 때문이다. 자신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떨어져야 했던 남매가 있고, 자신의 가르침이 실패해 다크 사이드로 빠진 제자가 있다. <오비완 케노비>의 주제는 곧 '속죄'이며, 드라마는 오비완이 속죄함으로써 후회를 극복하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나쁘지 않다. 은둔하고 있던 고수가 양민을 학살하는 통쾌함도 좋지만, 확실히 공화국을 몰락의 길로 걷게 한 결정적 순간에 오비완 케노비가 있었기 때문에 <오비완 케노비>의 속죄란 주제는 나름 유효하다. <오비완 케노비>의 문제는 이런 설정에 있지 않다. 드라마의 사건이 굉장히 적은 편이며, 덕분에 전개 속도가 느리다는 것에 있지.

 

오비완 케노비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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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완이 아무리 포스를 반쯤 봉인하고 살아왔다 하더라도 한 때 제다이 마스터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던 만큼 과거의 힘을 되찾는데 그렇게까지 긴 시간이 걸릴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은 사실 짧은 영화였다면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정정훈 감독이 빚어낸 노컨트라스트 질감으로부터 고전 영화를 보는 듯한 감각을 받고 있을 사람들이 느긋하게 전개되는, 사건의 빈도가 적고 공간적 배경이 다양하지 않은 <오비완 케노비>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여기에 덩달아 오비완의 회복이 늦어지니 액션도 지루하게 느껴졌을 터. 파다완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실력의 인퀴지터 하나가 난리를 치는 것만 잔뜩 나오니 액션이 별로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지 않나. 후반부 오비완과 다스 베이더의 듀얼이 대단히 화려하게 그려졌다는 걸 고려하면 액션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온 이유는 순전히 느린 전개 때문이다.


 느리디 느린 전개, 정확히 말해서 6부작이란 길이에 어떻게든 맞추려고 한 전개로부터 파생된 문제들은 정말 심각하다. 만약 2시간 반이나 4부작 드라마였으면 삭제되었을 장면들이 '굳이' 연출되었다는 점 때문에 드라마가 순식간에 헐거워졌으며, <오비완 케노비>를 혹평으로 몰아갔다. 오비완의 행동은 꾸준히 영리하지 않았고, 체이싱엔 긴박감이 전혀 없다. 산책을 하는 것처럼 허섭 하게 도망치는 오비완과 레아, 죽기 살기로 뛰는 인퀴지터과 스톰 트루퍼들의 모습에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일이다. 오비완과 레아는 은신조차 허술하고, 사방에 민폐를 다 끼치면서 다닌다. 영화로 기획되었다면 적당하게 넘길 수 있는 것들을 굳이 만들고, 몇몇 등장인물에 억지로 서사를 주입하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이다.


 물론, 늘어난 분량 탓이라면서 커버해줄 수 없는 내러티브 오류도 존재한다. 아무리 분노에 미쳐있었다 해도 다스 베이더가 인퀴지터 개인의 추정으로도 발견할 수 있었던 루크와 레아의 존재에 대해 마지막까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엉뚱하다. 두 차례의 듀얼에서 확인사살에 실패하거나 확인사살을 하지 않는 다스 베이더를 비롯해 <오비완 케노비>의 모든 전개는 다스 베이더의 실책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스 베이더라는 인물을 망가트려가면서 드라마를 전개했으니 스타워즈 팬덤이 들끓는 것도 당연하다.

 

오비완 케노비 회차 정보


 이렇게 이래저래 악평을 쏟아냈지만, <오비완 케노비>는 분명히 볼 만한 구석이 없지 않은 작품이다.


 영상화한 모든 작품들 중에서 다스 베이더의 액션을 가장 멋지게 구성한 작품이라는 점을 특별히 언급할 수 있겠다. 복장의 한계 때문인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조차 공포스러웠을지언정 액션이 대단했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걸 되새겨보면 분명히 그렇다. 특히 오비완과의 마지막 듀얼은 말도 못 하게 아름답다. 제다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 대부분이 등장하며 라이트 세이버끼리의 맞부딪힘은 HDR의 광원과 함께 휘황찬란하게 그려진다. 정정훈 감독의 노컨트라스트 컨셉 화면에 더해진 화려한 HDR 광원. 이게 어두운 행성이란 공간에서 벌어지다 보니 입을 다물 수 없는 영상미의 향연이 펼쳐진다.


 오비완 케노비를 맡은 이완 맥그리거의 연기력도 언급해볼 만하다. 깡마르고 조용한 노인네로 목소리에서도 힘이 안 느껴지는, 프리퀄 트릴로지 때와 완전히 달랐던 <오비완 케노비>의 초반부 이완 맥그리거가 후반부로 갈수록 눈빛이 광기가 돌며 몸놀림에도 힘이 더해진다. 특히 세 번째 자매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장면의 눈빛을 보고선 '오비완 케노비가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유사 부녀를 묘사하는 레아와의 관계도 처음에는 그저 귀찮은 아이 취급하는 연기를 실감 나게 하더니 마지막 즈음에는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존재를 바라보듯 연기를 해낸다. 그는 연기로 <만달로리안>의 유사 가족에 이어서 또 하나의 유사 가족이 탄생했음을 시사한다. 그야말로 이완 맥그리거의 원맨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