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13층, 어쩌면 그저 아류작일지도

즈라더 2019. 2. 23. 06:00

 <13층>이 영화사에 미묘한 위치에 있었던 이유는 비슷하다고 해도 접근법에서 <매트릭스>와 거리가 있었던 <다크 시티>와 달리 <13층>의 접근법이 <매트릭스>와 꽤나 닮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리 프로덕션 기간과 개봉마저 <매트릭스>와 겹치면서 '후배 영화'가 되어버렸다. 아류작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 애초에 <다크 시티> 역시 제작 표류 기간과 별개로 단순히 개봉 시기만 따지면 겨우 1년 차이라서 모호하기 짝이 없는데, 아예 <매트릭스>보다 늦게 개봉한 <13층>이야 말할 것도 없다.



 <13층>은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도 썩 좋은 편은 못 된다.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지만, 오로지 설정만으로 승부를 거는 영화라서 문제다. 초반부터 지나치게 반전 떡밥을 남발하는 바람에 세계관을 쉽게 눈치채게 되는 게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단점인데, 따지고 보자면 영화 제목을 <13층>이라 지은 것부터가 치명적이지 않았나 싶다. <매트릭스>처럼 '아이디어'뿐 아니라 이것저것 세련되게 버무린 혼종(?)이 아닌 오로지 '아이디어'로만 승부를 거는 영화의 제목이 <13층>이라니. 심지어 모든 게 밝혀진 이후엔 연출에 힘이 빠져서 스릴러로서 가치조차 깡그리 사라진다. 아니. 연출의 힘이 빠졌다기보다 나태한 각본 탓에 플롯이 단순해졌다는 쪽이 정확하겠다. 


 그러나, 그리고, 그럼에도 세기말 감성 듬뿍 담긴 이 시기의 SF 영화를 참 좋아한다. <13층> 역시 마찬가지.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를 엔딩도 아주 마음에 든다. 당시엔 이런 설정이 정말 신기했다.


 넷플릭스에 등록된 <13층>은 한국어 더빙을 지원한다. 생각없이 보다가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