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 셜록, 수사물 왕국 일본의 셜록 재해석

즈라더 2019. 2. 20. 18:00

 수사물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논란이 생길 수 있으나, 수사물을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여지 없이 <미스 셜록>을 제작한 일본이 정답이다. 2010년대 들어 밑바닥을 치는 드라마 업계에서 그나마 정상 시청률을 갱신하는 게 수사 드라마라는 걸 깨달은 업계가 '수사'가 들어갈 수 있을 모든 소재를 끌어다 수사물을 만든 덕이다. 형사, 변호사, 검사, 재판관, 보험사, 탐정, 의사 등 수사에 조금이라도 개입할 수 있을 모든 직업으로 수사물을 만들었다. 10부에 불과한 일본 드라마의 짧은 플레잉타임 덕분에 동어반복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며,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수사물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기 나름 차별화를 시도한 덕분에 다양성 측면에선 꽤 성공적이다. 물론, 분기의 절반이 수사물일 때마저 있는 지금의 상황을 '다양성'으로 접근하면 안 될 일이지만.

 

 즉, 일본 드라마 업계에서 <셜록 홈즈>는 이미 닳고 닳은 소재다. 추리, 수사물의 고전이니 만큼 수없이 오마쥬한 탓에 신선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단순히 <셜록 홈즈>를 현지화한 게 아니라 여성화해서 리메이크했다. 곧 <미스 셜록>이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타케우치 유코

 

 <미스 셜록>이 셜록을 여성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셜록의 행동은 원작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다. 언제나 자신을 우월하다고 인식하며 타인과 얽히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만, 사실 주변의 인물들을 구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츤데레. 이는 원작의 왓슨에 대응하는 와토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러쿵 저러쿵 딴지를 걸어도 결국엔 셜록의 행동에 동의하고 동행하며 함께 사건을 지켜보는 등 원작과 크게 다른 시선을 만들지 않았다. 이 드라마가 셜록을 여성화했다고 해서 래디컬 페미니즘이 담긴 건 아닌가 걱정할 필요도 없다.

 

 기존 일본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다소 이색적인 장소를 찾아 촬영한 <미스 셜록>은 화려하고 디테일한 소품의 힘까지 빌려 슬슬 고착 상태에 빠져가는 일본의 수사 드라마들과 차별화를 꾀한다. 그러나 원작과는 명백하게 다른 일본이란 배경 덕분에 위화감이 상당하며, 근대 영국과 현대 일본의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한 배경이 되고 말았다. 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신선한 바람이 될 수도 있다.

 

 타케우치 유코의 특색 있는 연기는 20년이란 장대한 시간 동안 대중 사이에 반복된 결과물이라 딱히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칸지야 시호리의 퍼포먼스는 언급할 가치가 있다. 셜록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코믹한 연기부터 함정에 빠져 처절하게 울부짖는 연기까지 무엇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는 경이의 연기를 펼쳐낸다. 반면 메인 빌런인 모리에티의 연기는 많이 아쉽다. 일본 수사 드라마의 에피소드1 빌런 수준에 불과한 캐릭터 구성을 평이한 연기로 소화하는 바람에 몹시 무난하며, 조금 더 나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미스 셜록>을 괜찮은 수사물 이상이 되지 못 하게 걸고 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