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서울과 도쿄를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해보다

즈라더 2021. 9. 13. 12:00

 도쿄와 서울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글쎄, 실제로 두 도시에 익숙한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극과 극에 가깝도록 다르다.


 도쿄는 말끔하다. 도로는 대체로 곧게 나있고, 건축물은 약간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직선적이다. 현대적인, 그리고 일부 거리의 일본적인 건축물들은 파리의 개선문 근처를 보는 것처럼 말끔하게 정돈되어 이어져 있다. 하라주쿠나 신주쿠, 긴자와 같이 정신없는 곳도 있지만, 그 마저도 상당히 절제된 경향이 짙다. 심지어 엄청 시끄러워도 이상하지 않을 거리의 매장에서 틀어놓는 음악 소리마저도 그리 크지 않다.


 도쿄에 세워져 있는 건축물의 색상톤은 검은색이 아닌 회색, 빨간색이 아닌 분홍색. 이런 식으로 색이 옅게 되어 있으며, 최근 그런 '깔맞춤' 없이 건축된 유리 건물들도 마치 형제라도 되는 것처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오다이바에 펼쳐진 웅장한 건축물들은 색감까지 일치해서 짓눌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멋지다. 기타 도쿄 해변의 작은 마을 혹은 그와 비슷하게 구성된 곳은 대부분 짙은 회색과 흰색, 파스텔 톤의 일본식 지붕이라서 중구난방으로 지어졌어도 정갈함과 단아함을 피워낸다. 도쿄 대폭격 이후 거의 삭제되다시피 했던 도시라 그런지 다른 도시에 비해 목조 건물보다 석조 건물의 비중이 조금 더 많고, 약간 창백한 분위기다. 정갈함 때문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낡음' 역시 도쿄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다.


 도쿄 내부를 돌아다니는 차는 경차가 많다. 합승차나 트럭조차 다마스 스타일(애초에 다마스 자체가 일본의 것을 베껴온 것이다.)일 때가 잦고, 최근엔 택시마저도 SUV와 경차의 중간 지점에 있는 크기로 만들어진다. 차도의 선과 선 사이는 서울에 비해 좁고, 그 탓에 고층 빌딩이 들어선 빌딩 숲의 도로도 서울보다 좁은 구간이 많다. 안 그래도 정갈한 느낌의 건물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도로마저 다소 좁다 보니 정갈함이 극에 달한다. 


 이런 도쿄의 진면목을 보려면 역시 전차를 타야 한다. 지하철 만큼이나 지상철도 많은 도쿄는 지상 전차를 타야만 도시 전반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할 만큼 독특하다. 본래 서울도 도쿄 지상철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이제 대부분 지하철이 되었기 때문에 고가 도로에 걸쳐진 전차 문화는 일본 고유의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덕분에 일본엔 전차, 기차 등의 철도 매니아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 엄청나게 얽혀 있는 전선들이 전차 위까지 도달하는 광경에서 지표면의 1인칭 시점과 전혀 다른 도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지저분한 단아함. 이 모순적인 표현이 도쿄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표현이 될 것 같다.

 

서울
서울
도쿄
도쿄
도쿄
도쿄
도쿄
서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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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은 혼란스러운 변태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건축물이 풍기는 분위기는 도쿄의 그것과 굉장히 닮았었다. 이는 한국 건축업이 일본의 그것에서 비롯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구조는 어떨지 몰라도 외관은 분명하게 달라졌고, 설사 건축물이 비슷하더라도 그걸 배치하는 방법에서 도쿄완 상이하다.


 한국을 산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연히) 서울 역시 산의 도시다. 서울의 각 구간은 산으로 나뉘어있을 때가 많으며, 도시 개발 자체도 산을 깎거나 뚫어서 했다. 서울은 평지와 산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독특한 도시. 이런 도시에 전후부터 사람이 끝도 없이 몰려들면서 도시 구획 같은 건 제대로 해보지도 못 한 채 건물을 잔뜩 쌓아 올렸다. 그렇게 생겨난 거리는 건축물을 헐고 다시 세우는 재개발 과정에서도 대부분 그대로 남았다. 


 개발이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졌거나 돈이 많은 구의 건축물들은 그야말로 웅장하다. 일본에도 웅장한 건물이 아주 많이 있지만, 한국 도심의 빌딩숲의 웅장함에는 비할 수 없다. 구릉에 만들어진 거리와 산지, 그리고 일본보다 훨씬 넓은 차도와 인도 때문에 같은 규모의 빌딩숲이어도 한국 쪽이 더 웅장하게 보이는 것. 지평선을 보기가 쉽지 않은 서울에서도 산 너머로 빌딩 끝이 줄이어 보이는 독특하고 괴상한 경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끔 안개가 많이 낀 날에 구릉 위의 작은 건물과 구릉 아래의 대형 빌딩의 옥상이 일직선처럼 보일 때도 있다. 난개발 지역의 거대한 빌딩 사이사이에 있는 낡고 허름한 건물들까지 보고 있노라면 서울이란 도시는 단아함이나 고풍스러움 대신 '야함'을 택했다는 어느 시인의 글귀가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개발된 신도시일수록 수직으로 곧게 뻗은 도시 구획을 볼 수 있고,  도로의 넓이도 엄청나게 넓다. 주변 건물들도 웅장하고 화려하다. 반면, 아주 오래전에 산지를 중심으로 개발된 지역은 구불구불하고 좁은 차로와 쿠바나 브라질의 산지에 만들어진 '위험한 지역'이 떠오를 정도로 낡고 허름하다. 그 거리를 오르다 보면 내가 도시를 걷고 있는 건지 산을 오르는 건지 모를 정도로 힘들다. 날씨가 맑을 때 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지역임에도 극과 극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주얼만 보면 뉴욕 맨하탄의 바로 옆에 멕시코 후아레즈가 붙어 있는 꼴이다.


 서울에서 젊은 세대가 많이 모이는 대학가를 둘러보면 화려하고 멋진 건물보다는 지저분하더라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밤이 되면 블레이드 러너 따윈 피식 웃게 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네온사인과 간판 등이 낮과 밤을 혼동케 하며, 아름답다고 할 순 없지만 역동적이라고는 할 수 있을 살벌한 광기를 제공한다. 사이버펑크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서울에 오면 된다.


 서울과 도쿄는 절대 닮지 않았다. 도시가 구성된 지리가 다르고, 도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성격이 다르다. 닮을 래야 닮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