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2021년에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즈라더 2021. 8. 12. 16:00

1. 워싱턴 포스트? BBC? CNN? 뉴욕 타임즈? 어디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 외국의 유력 언론에서 도쿄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재미있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그 기사를 한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일본인들의 수준을 보아 하니 일본 선수들이 금메달을 많이 따면 지금처럼 올림픽에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않을 것이다."였다. 


실제 내용은 더 심했다. 일본의 국민성 전체를 의심하고 비아냥거리는 기사였기 때문에 '아니, 너무 심하잖아'라는 생각을 했었는데(미국이나 영국의 국민성도 정상은 아니라는 게 드러난 시점이니까), 지금에 와서 보면 완벽한 선견지명이었다. 도쿄 올림픽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고 객관적인 위치에서 지켜보는 일본인은 트위터와 5ch 좌파게 정도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야후 재팬뿐 아니라 일본의 각종 SNS도 도쿄 올림픽을 비판하는 사람을 인간 쓰레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건 야후 재팬이 SNS와 연동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정작 스가 요시히데와 같은 사람들이 도쿄 올림픽을 성공이라 말했다는 기사가 뜨면 거기에선 실패한 올림픽이라고 욕한다. 어느 쪽 장단에 맞춰줘야 하나.)

 


2. 물론, 외신들이 일본의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했던 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을 예측했던 외신들도 깜짝 놀라는 점이 있는데, 모든 원인을 한국으로 돌려버리는 선동이 먹혔다는 사실이다. 상당한 숫자의 일본인들이 한국이 여론 조작을 통해서 한일 외의 다른 나라들까지 일본을 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진짜다. 도쿄 올림픽을 비판하는 외신의 '허브'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정보 습득이 조금 느린 사람들은 여전히 도쿄 올림픽에서 자체 급식소를 차린 나라가 한국뿐이라고 믿는다. 미국이 자체 급식소를 차린 걸 아는 사람들은 '후쿠시마가 문제'라고 언급한 건 한국뿐이라며 한국에게만 욕을 쏟아붓는다. 다시 말하는데 진짜다.


한국의 위생을 믿을 수 없다면서 평창 올림픽 당시 따로 급식소를 차린 일본 선수단을 생각해보면, 일본의 '후쿠시마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았다'는 주장은 역대급 자폭이 된다. 평창 올림픽 당시 일본은 후쿠시마와 같은 일부 지역이 아닌 한국 사람들 전체의 마음을 짓밟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현재진행형이다. 

 

썸네일용 예쁜 사진


3. 요새 이상한 국뽕 채널들이 잔뜩 생겼다. 특히 해외 댓글을 가져오는 채널들이 많아졌다. 당연하게도 그 중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 혹은 누가 봐도 한국인이 쓴 댓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댓글을 번역이랍시고 가져다가 놓는 채널이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것들은 조심하자.


"한국이 일본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어서 도와달라."


이것과 비슷한 댓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편하고 부드러운 표현이 나오는 일은 없다. 대충 '조선 시절에 다 죽어가던 시궁창 같은 나라를 살려준 게 일본 제국이니까 이번 올림픽을 비하한 춍 새끼들이 일본에 수백 조를 배상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전쟁이다.' 이런 정도가 일반적이고, 추천도 수만~수십만 개가 박힌다. 일본의 좌파게조차도 한국을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댓글을 달지 않는 마당에 무슨 저렇게 얌전한 댓글이 있다는 건가. 


특히, 월드 댓글TV라는 곳은 99% 거짓말이라고 보시라. 너무 어이없는 내용을 담고 있길래 월드 댓글TV 채널이 번역해온 댓글들을 일본 웹사이트에서 필사적으로 찾아봤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이를 보아 아마 대부분의 해외 댓글을 번역한 채널이 거짓말을 담고 있을 것이다. 댓글을 번역해온 링크를 게시하거나 캡쳐를 통해 어떤 댓글을 번역했는지 보여주는 곳을 제외하면 믿지 않기로 하자.


평범한 국뽕 채널론 돈 벌어먹기 어려운 모양이다. 비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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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본은 확실하게 쇠락하고 있다. 그것도 빛의 속도로 쇠락하고 있으며, 정부에 개선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한국도 다를 것은 없다. 주요 산업이 중국에게 다시 쫓기는 중이고, 한국 기업과 경쟁하던 대만 기업들은 중국에 밀착하고 있다. 미국의 기업들은 어떻게든 한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분야를 집어삼키려고 유럽과 힘을 합치는 중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 기업들에 상당히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만약 미국 기업이 한국을 확실하게 따돌릴 수 있다면 당연히 한국을 외면할 것이다. 지금 미국이 한국 기업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므로.

 

일본은 내수 시장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고, 버블 시절에 해외로 돌려놨던 자산들이 여전히 강력한 덕에 든든하지만, 한국은 산업 점유율이 한 번 밀리면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방역 때문에 산업에 제한이 걸리고 있는 한국과 달리 주요 선진국들과 중국은 이제 방역이고 뭐고 다 무시해버린 채 경제 발전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다. 안 그래도 한국 기업들에 이를 갈고 있던 경쟁 업체들은 방역으로 한국의 산업 발전에 제동이 걸린 지금이야말로 기회라며 질주하는 중이다. 빨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일본을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서 일본처럼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때다. 그래야 중국의 기업들을 억누를 수 있다. 가끔 보면 중국을 싫어하는 것에서 그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참 많다. 특히 국뽕 채널에서 빈번하게 보인다. 중국은 싫어할 뿐 아니라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다. 전세계에 빈곤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걸 본 중국의 기업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저가 시장을 공략했고, 순식간에 삼성과 애플의 점유율을 쓸어가고 있다. 중국은 단순히 역겨운 나라가 아니라 역겨운 만큼 두려운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