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텍사스 한파, 국뽕에 휘말리는 미국인들

즈라더 2021. 3. 15. 06:00

 얼마 전 텍사스에 한파가 불어닥치고 주가 마비되다시피 했을 때, 난 두 가지를 생각했다.


1.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어느 나라에서나 성립한다.
2. 미국인들이 힘들긴 하구나.


 현지인들은 한파로 인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수도관이 동파되거나 전기 공급이 끊겨서 그대로 죽는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 공포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외국 커뮤니티나 SNS에 올라온 것만 보고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남극에선 소변을 보면 바로 얼어버린다고 들었는데, 당시 텍사스는 그 남극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변기물이 얼어서 용변을 따로 봐야 한다거나, 자동차 창문과 집을 연결해서 히터를 켜 둔다던가, 멀쩡한 집을 내버려 두고 차 안에서 히터를 켜고 자다가 질식사한다던가 하는 일은 솔직히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닌가.

 

 현지인들은 이런 일을 겪으며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대한 불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무능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몰렸는데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에서 이렇게 대응을 못할 수가 있느냐라며 '한국이라면 금방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라고 말하더라.

 

본문과 관계 없는 사진


 헛소리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유능해도 '예상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한참 벗어난 재난을 빠르게 대응할 순 없다. 코로나19는 아시다시피 '질병본부'가 존재했고, 이전에 전염병을 겪어본 만큼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거지, 한국 정부가 예상할 수 없는 유형조차 순식간에 대응할 수 있음을 증명하진 않는다. 한국이 텍사스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졌더라도 아마 막대한 피해를 입고 나서야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면)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헛된 환상을 품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미국인들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알 것 같았다.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미국의 민낯을 까발렸다. 미국인들조차 이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듯하고, 아직도 코로나19로 인한 시체를 처리할 여력이 없어서 냉동차 운영을 하고 있는 걸 보아 그런 생각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머리'가 전대미문의 멍청이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일수록, 강력한 힘을 지닌 선진국일수록 머리는 중요하다. 트럼프가 머리에서 내려온 이상, 미국은 곧 한국에 대한 환상을 잊을 수 있을 만큼 빠르게 회복할 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