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산책하는 침략자, 쿠로사와 키요시가 사랑을 외치다

즈라더 2019. 2. 3. 03:30

 쿠로사와 키요시는 자극적인 워킹과 빠른 편집으로 대변되는 21세기 공포영화와 달리, 점진하며 스멀스멀 뒷골에 기어오르는 듯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 특유의 느긋한 감성 덕분에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감독인데, 여기에 영화 전체를 모호함으로 도배하는 작가주의 속성까지 가지고 있다. 그의 영화를 질색하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쿠로사와 키요시가 놀랍게도 SF 재난영화를 만들었다. 


 이미 <크리피>로 어떤 장르에서건 자신의 작가주의를 관철한다는 걸 알린 쿠로사와 키요시니 만큼 <산책하는 침략자>도 똑같이 갈 거라 확신했고, 그 확신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 영화엔 쿠로사와 키요시만의 색채가 가득하다. 영화 전체에 만연한 모호함은 '모호'에 살고 '모호'에 죽는 한국의 모 감독조차 한 수 접어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지경. 등장인물이 순간의 감으로 행동할 때조차 설명충 빙의를 거부하는 그의 강단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쿠로사와 키요시가 자신만의 연출 철학을 관철했다고 해서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격변 수준의 변화가 있었다. <산책하는 침략자>는 놀랍게도 광범위적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쿠로사와 키요시가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사랑이란 감정에서 비롯되며, 사랑이야말로 감정 그 자체라고 울부짖는다. <크리피>로 개인의 생존본능을 제외한 모든 감정은 가짜, 간단히 없애버릴 수 있다고 비아냥대던 그 쿠로사와 키요시가 무려 사랑을 노래하고 찬양한단 말이다. 이게 믿겨지는가?


 영화에서 놀랄 요소는 하나 더 있다. 바로 나가사와 마사미의 연기력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각종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휩쓸고 다니던 그녀가 꾸준히 작은 영화 큰 영화 가리지 않고 출연하더니 이제 연기의 정점에 이르른 모양이다.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그녀는 깜짝 놀랄 정도로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며 비로소 '연기파 배우'란 수식어를 당당히 내세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장면, 컷 하나하나에 장인 정신이 담긴 연기를 담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