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블 퍼니셔 시즌1, THE 밀리터리 첩보 드라마

즈라더 2019. 2. 2. 12:00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넷플릭스의 마블 시리즈에 끼친 영향은 때론 긍정적이고 때론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마블 제시카 존스>는 어쩌면 평작에 불과했을 사이킥 드라마의 곁에 마블이란 마법의 주머니를 둔 덕에 괜찮은 평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마블 퍼니셔>는 <마블 데어데블 시즌2>를 통째로 가져다 바쳐서 베이스를 만들어준 것치곤 너무 히어로 드라마답지 않다는 평가가 꽤 많다. 이러한 평가는 아직 <마블 퍼니셔>를 보지 못 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마블 히어로 드라마와 밀리터리 첩보 드라마, 둘 중의 어느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이 괴상한 질문이 유효한 이유는 뜻밖에도 <마블 퍼니셔>가 괜찮은 드라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마블 시리즈 중 가장 지루하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드라마는 PTSD에 시달리는 미군과 프랭크 캐슬 개인의 서사를 짜깁기하고, CIA의 부정부패를 메인 빌런 삼아서 근사한 밀리터리 첩보물로 탄생했다.



 <마블 퍼니셔>는 매우 적극적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의 연계를 거부한다. 저예산이란 악조건 속에서 필사적으로 투여한 리얼리즘의 총격씬과 격투씬이 인상 깊은데, 각종 무기를 현란하게 활용해서 악당들을 박살 내던 <마블 데어데블 시즌2>의 프랭크 캐슬은 없고, 근접 격투의 장인인 데어데블과 나름대로 맞싸우던 프랭크 캐슬 역시 없다. 프랭크 캐슬의 일당백 시퀀스가 몇개 나오지만, 어떻게든 현실의 선을 넘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짠내 나도록 드러난다. 마치 '이거 히어로 드라마 아니거든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마블 데어데블 시즌2>를 뿌리 삼아서 시작된 시리즈가 취하기엔 굉장히 건방진 스탠스긴 하지만, 드라마의 구성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히어로 드라마라는 기준을 버리고 <마블 퍼니셔>를 본다면(히어로 드라마인데 히어로 드라마의 기준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의 황당함은 일단 차치해두자), 지루하다는 평이 지배적인 중반부의 에피소드들이 놀랍도록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다. 프랭크 캐슬이란 무시무시한 무력을 지닌 개인이 권력자의 비리를 캐는 해커, PTSD에 시달리다 못 해 빌런으로 변신한 어느 군인과 만나서 자신 정체성을 명백히하는 과정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중반부는 투자한 시간 만큼이나 중요하고 또 긴장감 넘치며 아주 직접적으로 시대상을 투영한다. 가치 있는 것들이 한가득이다.



 이렇게 칭찬 같은 비판인지 비판 같은 칭찬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지만, <마블 퍼니셔>가 히어로 드라마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 한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라 반박할 수 없다. 좋은 드라마임이 틀림 없다고 해서 그게 대중의 기대치나 방향성과 맞으리란 법은 없고, 애초에 '퍼니셔'라는 히어로를 데려다가 별개의 밀리터리 첩보물을 찍어놨으니 긍정적일 수가 있나. 심지어 감춰져있던 메인 빌런은 '빌런'이 아닌 '전우' 혹은 '애인'의 이미지만 가지고 클라이막스로 향한다. 사랑하는 여자와 가족이나 다름없던 전우를 한 번에 잘라낼 기회를 수 없이 맞이하면서도 그러지 않고 한 발 물러서는 메인 빌런은 적어도 히어로 드라마에선 독이다. 즉, <마블 퍼니셔>가 잘 만든 드라마랄지라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뿌리에서 뻗어나온 이상 비판을 받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마블 퍼니셔 시즌2>가 며칠 전에 공개되었다. 얼른 감상하고 짤막한 리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