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만화 등의 책

피를 마시는 새, 이영도 작가가 몰입해있는 것

즈라더 2020. 8. 12. 00:00

 <피를 마시는 새>를 다시 읽고 있다. 읽을 때마다 여러 생각이 추가로 떠오르는 작품이라 맛이 난다. 이번에 조금 더 집중해서 본 부분은 '죄'의 다른 접근법이다.


 이전부터 '죄'에 대한 서술을 보며 참 언어도단적이고 문자의 이미지를 퇴색시키는 접근법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뭐가 어쨌든 <피를 마시는 새>가 지적하는 부분은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가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조상들의 끝없는 살육의 끝에서 탄생한 기적과 같은 존재란 의미다. 어마어마한 양의 식물과 동물을 잡아먹어서 살아남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죽여서 살아남았다. 우린 모두가 생존적 살육자의 후손이다.


 사실, 이건 단순히 '생물'과의 관계로 그치지 않는다. 진화의 방식부터가 적자생존이다. 인간은 죽음을 목도할 정도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한 적이 없다. 운 좋게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전자를 지닌 개체만이 살아남아서 번식을 했다는 것이 진화의 정체다. 이렇게 보자면 생존을 위한 유전자를 지니지 못 한 이들은 생존한 이들의 디딤돌이다. 우린 다른 생물의 희생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피를 마시는 새>의 세계관도 이 부분은 실제와 똑같은 것으로 그려져있다.

 


 <피를 마시는 새>에서 원시제, 그리미 마케로우는 이러한 자연적인 생존 과정에서 죽이고 죽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또한, 사람들은 굳이 생존과 관계가 없이도 모든 도구를 무기화해서 서로를 죽일 것임을 알았다. 사람들이 이런 살육을 마무리하고 '완전'해짐으로써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계산해보니 30만년이란 계산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정신 억압이 가능한 용을 남겨서 30만년을 1만 7천년으로 줄이기로 정했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끔찍한 군상극이 <피를 마시는 새>다.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를 보면 이영도 작가 역시 '시공간'에 푹 빠져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상을 구성하는 3차원을 뛰어넘은 고차원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 이는 <컨택트>, <인터스텔라>, <루시> 등 정말 많은 작가주의 감독들이 소재로 써왔는데, 이영도 작가는 '하늘치'의 존재로 이 사실을 이야기한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륜 페이는 용의 힘과 하늘치를 이용해서 과거를 본 뒤, 미래에 살고 있는 그리미 마케로우의 모습을 빌려서 현재의 케이건 드라카를 막는다.  <피를 마시는 새>의 제이어 솔한은 하늘치에 정신을 귀속시켜서 시간의 책장을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하늘치와 두억시니를 남겨두고 완전해진 첫 번째 종족이 시공간을 초월한 어느 차원으로 넘어갔음을 알 수 있다. 


 죄, 시공간, 모순, 식물. 이영도 작가가 몰입하고 있는 소재들은 무엇 하나 예사롭지가 않다. 자, 이제 <오버 더 초이스>를 다시 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