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게임처럼 자동 저장 기능이 필요한 인생

즈라더 2019. 1. 28. 06:00

 최근 게임에는 '자동 저장'이란 기능이 있다. 슬롯을 지정해주면 주요 구간이 끝날 때마다 자동으로 저장되는 기능이다. 이 기능을 보고 있노라니 최근 내가 겪은 엉망진창 혐생이 떠올라서 신(이 있다면)에게 이런 기능 하나 정도 인생에 필요하지 않냐고 묻고 싶어졌다.


 월수입 대략 250만 원 정도였다. 블로그에서 70만 원 정도가 나왔고, 나머지는 프리랜서로 이런저런 글쟁이 노릇, 심지어 대필 비슷한 것까지 해가면서 벌었던 돈이다. 대략 13평 정도 되는 투룸에서 생활하며 일이 없을 땐 블루레이 감상도 하면서 나름대로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블로그가 폐쇄되었다.



본문과 아무런 관계 없는 사진


 티스토리에 있는 광고 수익으로 먹고 사는 듯한 찌라시 블로거들을 마냥 욕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들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돈 별로 못 번다. 내가 하루에 15000명 정도 들어오는 블로그를 운영했음에도 한 달에 70만 원 정도였다. 본문 중간 광고를 비롯한 여러 적극적인 광고 배치를 했다면 150만 원까지도 넉넉히 노려볼 수 있었겠지만, 포스팅의 7할이 이미지 위주인 가벼운 블로그인데 본문 중간 광고까지 넣는 건 꾸준히 와주시는 분꼐 폐가 되는 것 같아 접어두었다. (이것도 지금은 후회하는 중이다) 아마 그래서 블로그로 얻는 수익을 만만하게 봤던 것 같다. 되새겨보면 난 그 70만 원이라도 나오는 블로그가 있었기에 투룸에서 살 수 있었다. 


 블로그가 폐쇄되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했던 건 다음 측에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블로그를 복구하는 거였다. 그러나 모 포털 사이트의 검색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 했던 나는 '에잇! 그럼 새로운 블로그를 파지 뭐!' 하고 쉽게 생각했다. 여기서 내 첫 번째 실수가 탄생했다. 폐쇄 직후 기존 블로그 주소를 따야 했는데, 옛날처럼 블로그를 만들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 영역 검색에 노출될 거라 생각했던 나는 아예 주소를 만들어서 새출발을 해버렸다. 새로 만든 주소는 당연하다는 듯 포털 사이트에서 무시당했다. 


 두 번째 실수도 바로 찾아왔다. 다음을 제외한 포털 사이트들이 티스토리를 블로그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내가 해야 했던 행동은 포털 사이트에 전부터 노출되고 있던 서브 블로그를 되살리는 거였다. 그러나 고객 센터의 '꾸준히 글을 쓰고 웹 표준을 지키면 노출 될 겁니다'라는 답변을 믿었던 나는 새로 판 주소에서 5개월을 버텼다. 5개월 동안 수백 개의 글을 포스팅했으나 무시당했고, 지금도 무시당하고 있다.


본문과 아무런 관계 없는 사진



 첫 번째 실수와 두 번째 실수 이후에 일어난 일은 꽤나 충격적이다. 날 고스트 라이터로 쓰고 있던 양반은 업계에서 퇴장했고, 그 외 프리랜서로 하고 있던 일들은 업계 전체가 아작 나는 상황이 되어 사라졌다. 수입이 아예 끊긴 것이다. 어딘가 취직을 하려고 해도 대학교 중퇴(사채를 써서라도 끝까지 다녔어야 했다...)에 자격증도 없고, 프리랜서로 한 일을 경력으로 취급하지 않는 세상(애초에 무슨 증명이 되겠는가마는)은 이미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내게 공무원 시험 외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블로그가 폐쇄되고 딱 5개월 동안 일어난 일이다.


 결국, 13평 투룸에서 5평 원룸으로 이사를 왔다.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아서 당분간 존버(?)하려면 월세를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세 번째 실수가 등장. 멘탈이 와장창 깨진 상황에서 집을 구하다보니 어느새 부동산에서 유도하는 대로 대학가에 와있었다. 다른 지역이면 이 월세로 엘레베이터와 주차장까지 있는 7~8 원룸에서 살 수 있다. 한숨을 푹 쉬며 1년 계약이 끝나는 대로 나가리라 결심해본다. 그 전에 일을 구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역시 적어도 내겐 자동 저장 기능이 필요한 게 맞다.